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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水原)과 물길물의 근원 도시에서 전자도시로

수원(水原)이란 한자의 뜻은 ‘물의 근원’이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 시대에는 수주(水州), 통일신라 시대에는 수성(水城), 고려 전기에는 수주(水州), 고려 후기에는 수원(水原)이라 하였다. 

이처럼 수원은 대대로 물과 관계된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서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재 수원과 주변에 있는 저수지는 다른 어느 곳보다 산재해 있다. 일정규모가 있는 저수지로 수원시내에 있는 것은 광교저수지, 만석거, 서호(축만제), 일월저수지, 원천저수지 등이 있다. 

행정구역 경계에 있는 저수지로 용인시에는 신갈저수지, 의왕시에는 왕송저수지, 화성시에는 만년제(미복원) 등이 있다. 

저수지가 많아서 생긴 이름일까 생각해보지만, 이 저수지들은 정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수원은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저수지하고는 관계가 없다.

논에서는 물을 사용하여 벼농사를 짓고, 물을 공급하지 못하는 땅은 밭이라 하여 채소 등을 경작하였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같은 농경 국가에서는 논이 밭보다 중요하고 논 중에서도 물을 쉽게 댈 수 있는 곳이 당연히 가치가 높았다. 한양의 한강 남쪽에 있는 높은 산으로는 관악산(632m)과 청계산(616m) 및 광교산(582m)을 들 수 있다. 농사짓는 물과 관계되는 산은 이 중 가장 낮은 광교산이 되는데, 이는 높은 관악산과 청계산은 한강하고 가까워 여기서 나오는 물길이 영향을 주는 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광교산의 물길은 크게 남과 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쪽은 안양천을 이루어 한강과 합쳐지는데 하나는 백운저수지 방향으로 흐르고, 하나는 지지대 고개 너머에서 시작한다. 남쪽은 광교저수지를 통해 수원천을 지나 황구지천이 되고 다시 진위천과 합쳐진 후 안성천과 만나 안산호를 지나 서해로 빠지게 되는데 길이가 80km가 넘는다. 광교산에서 시작한 물은 많은 경작지에 물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농경사회에서 물의 기원지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물의 기원인 수원이 다시 물의 도시로 된 것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한 정조는 고향 사람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과 소를 빌려주었고 풍작을 위해 저수지도 여러개 만들어 지원했다. 이로써 수원은 농업의 선진도시가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농업기술의 중심지가 되어왔다. 즉, 대한제국 시기 수원에 농림학교와 권업모범장이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농업기술의 발전을 꾀하였다. 해방 후에는 이 시설의 일부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병합되고 나머지는 농촌진흥청이 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가 농업 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하면서 수원도 농업도시에서 전자(삼성전자)도시로 변했고 농림청은 정주로 이전하게 된다. 농업이 주요산업에서 제외되면서 물길의 중요성도 사라지고 수원이 물의 기원지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김관수 기자  moa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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