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의 경제원동력, 역관(驛館)의 복원 움직임

역사적 신도시를 만든 정조는 새로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경제의 원동력인 양재역(良才驛-驛館)을 화성으로 이전한다. 이것이 영화역이다.

영화역(迎華驛)의 이름은 화산(華山)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다.

영화역은 약 100년간 운영되다가 1896년 용도폐지 되고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졌다.

지난 2013년에 장안문 외부에 있는 ‘영화동 주민센터’ 일대(거북시장)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영화역 복원 고유제를 지냈다.

수원시에서도 영화역 복원을 위한 용역을 시행하고 보고서를 발간하였지만 영화역의 위치를 찾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역 활성화를 위하여 3곳을 복원 대상지를 선정하여 '장안문 거북시장 도시 활력 증진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라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은 복원한 것은 대상이 되지 않는데, 수원 화성이 등재 된 이유는 화성성역의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설계도가 있고 유구의 일부가 하부에 남아있어 그대로 다시 복원이 가능하였기 에 어느정도 진정성을 인정받았다고 본다.

하지만 위치도 모르고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영화역의 복원을 추진한다면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에 누가 될 것이다. 건물들이 보존되어 등재 된 것도 아닌데 이제는 위치도 모르면서 복원을 시도 한다면 진정성의 논란이 증폭될 것이다.

영화역은 원래 양재역이 이전(移轉)하여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영화역도迎華驛>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은 영남으로 가는 좌로(左路:한양-양재-용인-양지-죽산-충주-상주-대구)와 호남으로 가는 우로(右路 : 한양-과천-수원-진위-공주-전주)로 되어 있었다.

특히 영남으로 가는 양재역은 옛 말죽거리에 있고, 명종 2년(1547)에는 벽서사건이 일어난 정미사화의 시발점이 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정조는 1796년 가을, 화성 축성이 끝난 후 화성의 경제적 부흥을 위해 양재역을 장안문 밖으로 이전시키고 삼남 가는 모든 길을 이곳으로 집중시켜 역로(驛路)를 영화도로 개편하고 중심이 영화역이 되게 하였다.

<화성반차도 - 영화역 확대>        

양재역을 화성으로 옮긴 것은 삼남의 모든 길이 합해지는 것이며 화성(華城)의 위계가 달라지는 큰 사건이었다. 삼남의 문물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화성을 통과해야 하고 영화역에 머물게 되는데, 이는 화성이 경관적 신도시가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활기찬 신도시가 되는 계기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도 신도시가 경쟁력은 없고 대도시의 베드타운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런 형식적인 도시가 아니라 실질적 경쟁력이 있는 거국적인 도시계획이 이미 200년 전에 이루어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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