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성당 전경(사진=허강훈)
구산성당 전경(사진=허강훈)

하남시에 위치한 가치 있는 건축물을 소개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을 때 여러 날 고민이 많았다. 하남시 도시 이미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사리, 미사 신도시, 하남 스타필드 등이다. 하지만 이번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구산 성당이다.

구산성당 전경(사진=허강훈)
구산성당 전경(사진=허강훈)

구산성당의 탄생

구산 성당은 1836년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생가에서 시작한 구산 공소(公所)가 구산 성당의 시초이다. ‘공소’란 성당보다 작은 단위를 뜻하는데, 주임신부 없이 신도들만으로 운영되는 곳을 뜻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 200년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당없이 공소로만 운영된 공소시대였기에, 한국 천주교 역사의 모태는 공소라고 할 수 있다. ‘공소’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성직자의 도움 없이 평범한 신자들이 자신들 노력으로 종교의 자유를 지켜낸 기간이 그만큼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 동상(사진=허강훈)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 동상(사진=허강훈)

구산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 서양인 신부 피에르 모방(Pierre Philibert Maubant)신부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은신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라아 성인이 거쳐가기도 한 곳이다.

구산 성당은 공소로 시작해서 구한말 갖은 종교 박해를 꿋꿋이 이겨낸 마을 주민들이 한강에서 직접 자갈돌을 옮기고, 벽돌을 만들고, 명동 성당을 짓고 남았던 목재 등을 사용해 1956년에 5월부터 2년간 긴 시간을 들여 완성했기에 더욱 특별한 건축물로 기억된다.

근대건축전문가인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는 구산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구산성당은 마을 주민들이 돌 하나, 모래 한 사발을 직접 비벼서 벽을 쌓고 지붕을 세워 만든 굉장히 진정성 높은 근대유산입니다. 명동성당을 짓는데 구산성당 사람들이 직접 가서 일을 하셨고, 그 다음에 약현성당을 비롯해서 천호동 성당 등(구산성당 신도들이 성당 건설에 직접 참여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시화 전 과정을 이 성당이 체험한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천주교史(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도시歷史(역사)’ 측면에서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2016.11.17. SBS뉴스 인터뷰 발췌)

구산성당 입구(사진=허강훈)
구산성당 입구(사진=허강훈)
스테인드 글라스 디테일(사진=허강훈)
스테인드 글라스 디테일(사진=허강훈)

철거 위기에 놓인 구산성당

구산 성당이 더욱 특별한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경기도 하남시 미사 강변 지구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성당 부지는 옮기고 기존 성당 건축물은 철거하기로 결정되었다.

철거 위기에 놓인 구산 성당의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구산성당 신자, 시민, 학자들이 참여하고 민간 공익 재단 엔씨소프트 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구산 성당 원형보존 실행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때 건축계에서도 철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당시 승효상 건축사는 “구산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 권리인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한국 민중들이 스스로 종교의 자유를 일궈낸 숭고한 업적을 증명하는 동시에,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공동체의식으로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건축물을 민중 스스로 만든,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자랑스러운 이정표입니다.” (2016.07.11. SBS뉴스 인터뷰)

이축 이후 모습(사진=허강훈)
이축 이후 모습(사진=허강훈)

구산성당의 원형보존 이축

위원회의 노력과 교구 내부 중재와 합의로 옛 건축물의 원형을 그대로 이동해 보전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위원회는 원형 보존을 위해 문화재 보수 전문 기업 ㈜티앰새한(http://문화재수리.kr)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구산 성당의 연면적은 131.1㎡, 건축물의 높이는 6.8m, 기초는 무근콘크리트 줄기초, 벽체는 시멘트 조적조, 지붕은 목조 트러스 구조에 해당되는 건축물이다.

이축 과정
이축 과정

60년이나 된 조적조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이축하는 것은 국내 첫 시도였기 때문에 시공사인 ㈜티엠새한은 작업의 성공을 위해 이축 경험이 많은 해외 전문 회사의 기술자문을 의뢰했다고 한다.이때 선정된 공법은 드잡이 레일이동 공법을 적용했다.

드잡이 레일 이동 공법은 전통 목조 건축물 등에 주로 사용하는 기술로서 H빔 위에 건축물을 통째로 올려놓은 뒤 이동하는 작업으로 6개의 와이어로 건축물을 묶고 당겨 건물 바닥과 지반사이에 깔린 파이프 레일 조각들이 바퀴 역할을 해 움직이도록 했다.

2016년 12월 4일 이동을 시작 후 하루 15미터씩 이동해서 200미터 옮겨 현재의 자리로 원형 그대로 이전하는 것에 성공했다. 2017년 2월 원형 그대로 이전한 성당은 새로운 부지에 기초보강과 종탑과 내·외부 보강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구산 성당은 벽돌조 건축물을 해체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옮겨 보존한 국내 최초·유일의 사례의 건축물로 건축기술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배당 내부(사진=허강훈)
예배당 내부(사진=허강훈)
예배당 내부(사진=허강훈)
예배당 내부(사진=허강훈)

하남시 최초 경기도 등록문화재 지정

2023년 3월 31일 하남시 최초로 경기도 등록문화제(제18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는 하남시 구산 옛 성당을 ‘시대상을 잘 반영한 건물로 공소(公所) 건축물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줬으며, 원형 이축(移築)이라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방법론을 새롭게 제시한 사례’라고 평가하며 자체 지정하는 18번째 등록 문화재로 선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경기신문)

이재진 하남시 학예사는 “6.25 전쟁이후 주민들이 전후 복구 분위기 속에서 직접 자갈돌을 옮겨서 지어낸 건축물로써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다”(2023.4.26.KBS경인 뉴스 인터뷰)

역사와 기억이 켜켜이 쌓인 건축물

구산 성당을 처음 답사했을 때 이 건축물이 갖고 있는 여러 역사적 가치를 알지 못했다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과 철거 위기에 놓였을 당시 이 성당의 신자, 시민, 학계와 기업이 마음을 모아 건축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형보존 이축이라는 방식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구산 성당을 조사하면서 팔림세스트(palimpsest)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스어로 ‘다시’라는 단어와 ‘문질러 벗겨내다’라는 뜻으로 썼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든 양피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4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성당 안에 과거의 역사와 흔적이 켜켜이 쌓여 성당을 방문한 자들에게 신앙 유무를 떠나 오랫동안 기억될 건축물임을 확신하면서 하남시를 대표하는 가치있는 건축물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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