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가권자에게 위임 받은 「보이지 않는 힘」

건축사로서 업무를 하다보면 대형 건축사사무소든 소형 건축사사무소든 관청 담당자와 각종 심의위원들을 만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경험하게 된다. 거의 모든 경우에 의견이 상충하였을 때 건축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보다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굴욕적인 항복, 이름하여 조건부 허가, 조건부 의결이라는 딱지를 받고 돌아서게 된다. 근거도 없고 기준도 없이 위임받은 자의 생각과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려야 한다. 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부딪히는 부분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대다수 경기도 건축사가 소규모 건축물 설계 시 매일 같이 부딪히고 있다. 다락, 발코니, 8대 이하 소규모주차, 대지 안의 공지, 그리고 최근에 많이 언급되는 소방관 진입창 관련규정 등등 아주 흔하게 만나게 되는 것들이다.

건축사뉴스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주제로 “대지안의 공지”를 선정하였다. 이번에는 경기도 지역 전체에 설문지를 모바일로 배포, 482명의 경기도건축사회 회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답변에 응했다. 각 지역건축사회 회원 수의 차이가 있지만 특히 구리·남양주, 고양, 시흥, 평택, 용인, 성남지역건축사회 회원들의 관심도에 놀랐고 열정을 느꼈다.

경기도건축사회 23개지역건축사회 설문참여도
경기도건축사회 23개지역건축사회 설문참여도

현재 대지 안의 공지에 관한  건축법과 시행령규정은 아래에 같다.

건축법 제58조(대지 안의 공지) 건축물을 건축하는 경우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용도지역ㆍ용도지구, 건축물의 용도 및 규모 등에 따라 건축선 및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6미터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거리 이상을 띄워야 한다. <개정 2011. 5. 30.>

건축법시행령 제80조의2(대지 안의 공지) 법 제58조에 따라 건축선(법 제46조제1항에 따른 건축선을 말한다. 이하 같다) 및 인접 대지경계선(대지와 대지 사이에 공원, 철도, 하천, 광장, 공공공지, 녹지, 그 밖에 건축이 허용되지 아니하는 공지가 있는 경우에는 그 반대편의 경계선을 말한다)으로부터 건축물의 각 부분까지 띄어야 하는 거리의 기준은 별표 2와 같다.

건축선 또는 인접대지 경계선으로부터 건축물까지 정해진 거리를 이격하라는 내용이다. 건축사로서 위의 기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 얼마 되지않는 사이의 공간에 예측 가능한 법의 힘이 작용 하기보다는 위임 받은 자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어떤 건축사에게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지안의 공지에 관한 설문을 통해 경기도건축사회 회원들이 경험한 내용들을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법과 지자체 조례 상에서 정하는 거리 규정 이외에 다른 조건을 관할 청으로로부타 요구받은 적인 있는 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35.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물론 특정 지역이거나 특정 공무원으로 인해 규제를 받은 비율이 편중 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고 또다른 규제를 받고 필요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는 동료 건축사가 생각보다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용도가 복합된 건축물에 대한 대지안의 공지 기준 적용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예상 외로 많은 건축사들이 적절하지 않게 규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저층부에 상가가 있고, 고층부에 공동주택이 있을 경우 그 용도에 맞게 저층부는 상가의 공지규정을, 상부의 공동주택은 공동주택의 규정을 받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전체를 공동주택규정으로 적용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격거리 외에 대지안의 공지 법규 적용에 있어 큰 이슈는 ‘과연 그 공간은 어떤 상태로 계획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법 규정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 건축사들이 얼마나 많은 질의 회신을 국토부에 했을까? 국토부 설명의 시작은 다음과 같이 매번 똑같은 문구를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반복하고 있다.

「건축법」제58조의 대지안의 공지 규정은 기본적으로 대지안의 통풍․개방감을 확보하여 도시 및 주거환경을 보호하고 화재발생 시 인접대지 및 건축물로의 연소확산 예방과 피난통로를 확보하며 도로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 .(이하생략)

그리고 마지막은 담당허가권자와 상의를 바란다로 마무리된다. 칼자루는 담당자에게 있다고 보이지 않는 힘을 친절하게 확인시켜준다.

 

◇ 대지안의 공지 내 주차구획에 대한 규제가 가장 많아

◇ 소규모 건축물, 현행 제도를 최소 기준으로 유지하는 의견이 과반수 이상

아래 그래프는 대지안의 공지 내 규제 받은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주차구획'에 대한 규제가 가장 많았다(30.5%)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미 2010년 6월 14일 법제처 법령해석에 의한 논란으로 국토해양부에서는 2012년 10월18일 “대지안의 공지 규정 운영지침”이 시달되어 건축물의 출입구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피난에 지장이 있는 주차장만을 제한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실로 돌아가면 인접대지에서 피난통로 확보를 명분으로 주치구획을 불허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규제가 옳은지 그런지는 건축사들의 개인적 생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A건축사의 경우에는 되고, B건축사의 경우는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단순히 운이 없었다고, 남의 일처럼 보지 말았으면 한다.

대지안의 공지에 관해 겪는 불편한 진실은 주로 도시지역 내 소규모 주거관련 건물(단독주택, 공동주택)을 설계하는 건축사들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문제이다.

아래 결과는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건축사들의 생각이다. 당연히 현행 제도를 최소 기준으로 유지하는 의견이 과반수 이상(53.5%)으로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소규모 건축물의 공지 규정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아주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타 완화나 폐지하자는 의견들에 대한 이유를 분석해 본 결과 건축물의 공사를 위해서는 경계선 사이에 비계설치 등 작업공간이 필요하기에 이격하지 말라고 해도 최소 공간은 이격한다는 점, 그리고 외벽재료와 필로티에 대한 강화된 준불연 재료 기준 등 화재 확산의 위험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 추가하여 소방관진입창, 방범, 방화창에 대한 강화된 기준 등, 대지안의 공지 취지를 보완하는 규제들로 인해 현 대지안의 공지 규정을 소규모 건축에서는 실효성 있게 개선 완화 또는 폐지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규모 건축 설계 시 대지안의 공지 내 조경 식재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는 많은 건축사들이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다양했고 오히려 좋은 주거환경을 위해서는 더 강화하는 쪽의 의견들도 있었다.

조경 식재에 대한 기타 의견 중 성남지역 모 건축사는 "인접대지 변으로 조경면적을 위한 조경 식재는 시간이 지나면 실효성이 없고, 실외기 및 각종 쓰레기로 유지 관리조차 잘 되지않아 화재의 위험성이 있다. 오히려 도시 내 소규모 건축물은 옥상조경 위주로 계획하게 유도하고, 조경 식재 비율기준도 수정하면 좁은 지상부에 억지로 무늬만 조경을 하는 대신 취지에 맞는 공지가 생성 가능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현실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다.

안성지역 모 건축사는 "대지안의 공지는 건축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공지 내에 조경이 허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안타까운 현실은 조경의 위치가 도심지의 경우 지상에 설치시 햇빛을 보지못해서 유지관리가 안 되고 죽어 없어지고 추후에는 그냥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로 건축물이 밀집한 곳에서는 지상에 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적인 요소가 많지 않으므로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옥상조경을 완화하여 확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한 공지 안의 주차 문제는 공지를 적극 활용하여 주차난을 해소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피난 통로나 장애인 통로, 차로 등의 확보가 필요하므로 안전 상의 장치는 충분하므로 피난에 지장이없다면 주차장으로 확보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고 전했다.

무조건 조경 면적 50% 이상은 공식처럼 지상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갖혀있던 필자에게 다른 시각을 던져주었다. 물론 기술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해야겠지만 이런 설문을 통해 참신하고 더 좋은 건축환경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축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또 다시 느끼게 된다.

◇ 소규모 건축 설계 시 주차구획 허용해야한다는 의견이 다수

소규모 건축 설계 시 주차구획 규제 대해서는 건축주의 사업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공지 내 주차구획은 허용해야 한다는 답변(68.5%)이 많았다. 

그 외에도 인접지 방화와 연소에 관한 안전성 측면에서 많은 건축사가 현행대로 최소 기준을 유지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있지만 반대로 아래의 의견처럼 대지안의 공지 규정에 대한 완화 또는 폐지에 관한 의견도 있었다.

용인지역 모 건축사는 "대지안의 공지 규정이 있어도 방화창호 미설치로 인한 이격거리 확보가 있어 실질적으로 벽체에 창호를 설치하려면 대지경계선에서 이격을 해야만 하므로(이하 생략) "

구리·남양주지역 모 건축사는 "대지안의 공지는 통풍 연소 염려에서 규정된 것으로 창문이 없고 내화구조라면 이격거리가 필요치않다고 생각되며 이웃 간 합의가 된것 이라면 더욱이 필요치않다. 그외는 규정대로 시공성을 고려해 1.0m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다른 의견도 있었다.

대지안의 공지 규정의  유지 또는 폐지의 대립된 의견  이외에  관련 된 기타 의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인접대지의 대지안의 공지는 최소화하고 도로변의 공지는 어느 정도 유지하여서 불필요한 공간이 소모되는것을 방지해야 한다.(양주지역 건축사)

- 공지의 효율성과 실제로 활용가능 여부를 판단하여 입법 개선되기를 바란다.(용인지역 건축사)

- 공지규정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구도심에서 치열하게 발생하므로 복잡한 구도심의 도로폭 등을 저층부에서 확보하게 하고 상층부는 도시기능에 맞게 용적을 부여하는 것이 구도심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발 나아가는 것(성남지역  건축사)

- 대지안의 공지는 분명한 목적에 의한 이격거리 설정이 필요하다. 걸맞는 이론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이하생략)(고양지역  건축사)

- 종합적으로 검토할 사항인데, 건폐율과 대지안 공지는 강화하고, 용적률은 완화하며, 정북방향 일조권은 없애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조경의 경우 높낮이가 없거나, 안전상 난간 역할을 하도록 하며, 보행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규제하지 말아야한다.(용인지역 건축사)

- 과도한 건축 규제로 인해 건축계획에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사고의 중심을 거주자의 입장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화재시 최소한의 대피로는 마련하되 그외에 공지는 면적으로 산정하여 조경 공간 및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고, 건물과 건물사이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일률적인 이격이 아닌 진정한 대지안의 공지가 필요함)(성남지역  건축사)

- 지자체마다  다른 규정을 통일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수원지역  건축사)

◇ 건축사들이 겪은 내용들과 의견을 청취 통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결과로 이어지길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지역적인 편차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어느 정도하였기 때문에 지역건축사회의 입장보다는 건축사 개인이 실제로 겪은 내용들과 의견을 청취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결과자료를 통해 자기가 속한 상황과 전문 업무에 따라서 어떤 건축사들은 불합리하다, 또 다른 건축사들을 취지상 당연한 것 아니냐라는 의견이 있을 것이다.

건축사뉴스에서 올해 이런 기획기사를 다루는 이유는 법이 문제다 공무원이 문제다 그러니 싹 다 바꾸어야한다가 아니라 내 옆에 다른 동료 건축사가 어떤 어려움에 겪고 있는지 공감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며, 그 다음에 개선의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의견 중 파주지역의 한 건축사의 의견이 가장 가슴에 찔렸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역별로 도시계획 심의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법보다 위에 군림하고 심의위원 한마디에 사업계획이 난도질 받는 상황이며, 허가권자는 법의 보호를 해주기보다는 심의위원의 눈치를 보고 일을 하고 있는 상태임 이런 설문조사는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필자처럼 생업과 동시에 시간을 쪼개어 경기도건축사회에 봉사하는 건축사들에 대한 비판으로 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 의견의 행간에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힘든 상황들을 겪었을까? 많은 변화를 위해 노력했었지만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현실에 자포자기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한 지역에서 인허가시 8대 이하 주차구획 규제 문제로 sns상에서 큰 이슈가 있었다. 예전에는 남의 동네 이야기였으나 지금은 이 이야기가 전달되고 퍼지면서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물론 그 결과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고 어제 한 두 명이 이야기 하던 목소리가 오늘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기사를 서두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건축행정을 하면서 우리가 혼자 극복할 수 없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은 모든 건축사들이 다 아는 뻔한 이야기다. 이 뻔한 이야기가 내 생업에 영향을 주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 수 있도록 경기도건축사회 회원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경기도건축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어주기를 바란다. 경기도건축사회도 이 작은 하나 하나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고 행동으로 나은 결과를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이상 앞서 인용한 파주지역 건축사의 말처럼 이 현실의 보이지 않는 힘에 우리의 노력이 시간낭비라 여기며 포기해 버리는 건축사들이 만들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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