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대학교 구 본관(현 부산대학교 인문관), 1956

김중업은 프랑스에서 귀국 후 1950년대에 3개의 대학교 건물을 설계하는데, 첫 작업으로 부산대학교 본관을 설계하였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2,631㎡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1956년 설계를 시작해 1957년 9월 착공, 1959년 10월 준공되었다. 완공 당시 대학 정문이었으나 현재 ‘무지개문’이라 불리는 아치형 구조물과 그 옆의 경비실을 함께 설계해 1957년 완성했다.

사진1. 부산대학교 구 본관
사진1. 부산대학교 구 본관

부산대학교가 위치한 금정산의 지형에 따라 ‘ㄴ’자 형태이며 1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필로티구조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로지를 수 있게 했다. 조형적 요소로 강조된 내부 계단이 특징인데, 계단실 앞쪽이 유리로 되어 캠퍼스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규칙적 모듈에 의한 평면구성, 높은 층고, 전면의 유리창, 후면의 모자이크 창 구성 등은 스승 르꼬르뷔지에의 스타일이 많이 반영되었다.

사진2. 금정산과 구 본관
사진2. 금정산과 구 본관

1996년 내부 개보수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2004년부터 2년간 원형복원을 위한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2년에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다.(김중업 다이얼로그. 2018. P86 발췌)

사진3. 인문관 배치
사진3. 인문관 배치

이번 연재를 위해 취재차 부산까지 심야버스를 타고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부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첫 지하철을 타고 부산대학교로 향해 본다. 너무 새벽 일찍 도착했을까. 들어갈 수 없어 잠시 구 본관(이하 인문관) 앞을 서성여 본다. 정문부터 내가 알던 부산대학교의 정문이 아니고, 이미 개발이 되어있었다.

사진4. 인문관 새벽1
사진4. 인문관 새벽1
사진5. 인문관 새벽2
사진5. 인문관 새벽2

근처 카페에서 아침까지 밝아지기를 기다려 다시 인문관을 향한다.

사진6. 부산대학교 구 본관 안내
사진6. 부산대학교 구 본관 안내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인 김중업의 설계를 알리고 있는 안내판이 정면에 위치해 있다. 당시 설계 의도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첫 번째, 인문관은 금정산을 등지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건물이 외부공간을 끌어안도록 ‘ㄴ’자 형태로 설계하였다.

두 번째, 캠퍼스를 통한하는 상징적 구심점이 되도록 설계하였다. 모퉁이를 곡선으로 부드럽게 처리하거나 건물 내부에서 캠퍼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여 건물의 위엄을 더하였다. 건물의 전면부에 있는 넓은 유리창은 강렬한 햇빛을 흡수해 건물 내부에 빛의 향연을 연출하도록 하였고, 후면부의 모자이크 창은 복도마다 햇볕의 온기를 불어놓도록 하였다.

세 번째, 건물에서 건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필로티 구조로 설계했다. 이곳을 드나드는 젊은 지성들의 자유로운 발상을 한껏 살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진7. 근대건조물
사진7. 근대건조물

인문관은 국가등록문화재 제641호, 부산시 근대건조물 제20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8. 인문관
사진8. 인문관

금정산을 등지고 있다는 인문관은 답사일 비가 오는 관계로 잘 안보이지만 희미하게나마 금정산이 보인다.

사진9. 인문관 정면
사진9. 인문관 정면
사진10. 인문관 1층 부분
사진10. 인문관 1층 부분

직선과 곡선이 자유롭게 쓰이고 있다.

사진11. 인문관 곡면중앙부
사진11. 인문관 곡면중앙부
사진12. 인문관 1층 평면도(필로티와 자유로운 곡선)-PA
사진12. 인문관 1층 평면도(필로티와 자유로운 곡선)-PA
사진13. 인문관 필로티
사진13. 인문관 필로티

위의 1층 평면도와 같이 1층의 대부분은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어 인문대 교수연구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는 병산서원, 부석사 등의 우리 고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사진 부지를 이용한 동선의 연결 형태를 서양의 건축구법인 필로티 구조로 잘 표현한 것이다.

사진14. 인문관 필로티2
사진14. 인문관 필로티2

필로티 구조로 생긴 공간은 단순히 통과 동선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외부학습공간, 휴게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사진15. 인문관 투시도(김중업박물관 도록 2015)
사진15. 인문관 투시도(김중업박물관 도록 2015)

현재는 1층의 일부 필로티를 막아 실내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초기의 투시도를 보면 필로티 구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는 르꼬르뷔지에 아틀리에 근무 당시 참여했던, 챤디가르 행정청사의 입면 분절방식이나,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필로티로 처리된 1층과 유사하다. 곡선으로 돌아가는 입면부분은 전체가 유리와 같은 얇은 멀리온으로 처리되어 가볍고 투명한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양 근현대 건축을 우리나라에 적용시키는 시도로 보면 되겠다.

사진16. 인문관 외부계단
사진16. 인문관 외부계단
사진17. 구 본관에서 김중업(이미지출처, 김중업 다이얼로그, 2018, 95P)
사진17. 구 본관에서 김중업(이미지출처, 김중업 다이얼로그, 2018, 95P)

개인적으로 김중업의 초창기 작업에서 많이 보이는 외부 계단은 ‘멋’이라는게 느껴진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나 계단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위의 사진처럼 김중업도 당당하게 서 있다. 모자이크 창의 모습이 보여 진다.

실내 중앙홀로 들어오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중앙계단.  

사진18. 인문관 중앙계단-1
사진18. 인문관 중앙계단-1
사진19. 인문관 중앙계단-2
사진19. 인문관 중앙계단-2
사진20. 인문관 중앙계단-3
사진20. 인문관 중앙계단-3
사진21. 인문관 중앙계단-4
사진21. 인문관 중앙계단-4

중앙홀이 그렇게 넓지는 않아 이런 계단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서양건축에서의 중앙 계단은 마담이 요란한 모자와 드레스를 하고, 꽉 조인 코르셋을 입고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려오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던 것일까?

계단을 돌아 올라가면서도 공간 효율을 생각하면, 특히나 곡면창 쪽 복도의 기둥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설계했어야 했나 의구심이 들지만, 복도를 돌아 올라가면서 보이는 각 층의 캠퍼스 모습이 다채롭다.

사진22. 복도에서의 뷰
사진22. 복도에서의 뷰

 어쩌면 필자가 처음 건축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그런 모습이다.

뭐 이런 공간이 있지? 창문은 왜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런데 창문들의 빛들이 춤을 추네. 빛이 즐거워 보이네. 행복해 보인다.

“나도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을 하게 만든 그런 공간이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우며, 보고 있는 현재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맑은 날에는 더 찬란히 빛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기억의 공간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사진23. 모자이크 창-1
사진23. 모자이크 창-1
사진24. 모자이크 창-2
사진24. 모자이크 창-2
사진25. 인문관 복도창-1
사진25. 인문관 복도창-1
사진26. 인문관 복도창-2
사진26. 인문관 복도창-2

인문관 복도의 창. 우리 전통 격자 무늬 같기도 하고, 몬드리안의 그림 같기도 한 면 분할을 하고 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입면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유사한 느낌이다.

사진27. 중앙계단 5층에서 본 캠퍼스
사진27. 중앙계단 5층에서 본 캠퍼스
사진28. 인문관 좌측면
사진28. 인문관 좌측면

비는 그쳤지만 더 맑은 날에는 더 멀리 보였으리라.

사진29. 인문관 전경
사진29. 인문관 전경

새벽에 비가 와서 맑은 하늘과 금정산을 볼 수는 없었지만, 건축을 하리라 처음 마음먹은 공간을 다시 방문하는 느낌이 새롭다.

행복해지는 공간, 이를 설계하는 건축사.

필자는 행복한 직업을 가진 게 틀림없다.

2. 부산 충혼탑(1980)

부산역에서 영주동 산복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산 정상에 보였다 말았다 하는 탑이 하나 있다. 

사진1. 부산중앙공원 충혼탑
사진1. 부산중앙공원 충혼탑
사진2. 부산충혼탑
사진2. 부산충혼탑

부산 중앙공원에 위치한 충혼탑이다.

지금은 광안리 해변이 불꽃축제의 포인트지만 필자가 어릴 적에는 이곳, 중앙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했었다. 당연히 부산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불꽃을 볼 수 있었지만 불꽃놀이 화약을 쏘아 올리는 바로 그 아래에 돗자리 펴고 누워 보는 게 최고의 힐링 포인트였다. 그런 곳을 거의 30년이나 지나서 오게 되었다. 크게 바뀐 것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에 조금은 당황했다.

사진3. 충혼탑입구
사진3. 충혼탑입구

출입구부터 대한민국 충혼이 맞이한다.

사진4. 충혼탑 정문
사진4. 충혼탑 정문
사진5. 충혼탑 계단
사진5. 충혼탑 계단

계단 중간중간에 지그재그로 가르는 경사로가 있다.

사진6. 부산충혼탑 배치도(김중업 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 2003, 213P)
사진6. 부산충혼탑 배치도(김중업 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 2003, 213P)
사진7. 부산충혼탑
사진7. 부산충혼탑

계단을 다 오르면 충혼탑이 맞이한다.

사진8. 용사상
사진8. 용사상

우리나라를 지킨 용사들. 각 군을 대표하는 용맹한 모습이다.

사진9. 충혼탑 비
사진9. 충혼탑 비
사진10. 충혼탑 평면도(김중업 다이얼로그/383P)
사진10. 충혼탑 평면도(김중업 다이얼로그/383P)

다소 기하학적인 모양의 평면도다.

사진11. 충혼탑 주변 수공간
사진11. 충혼탑 주변 수공간
사진12. 부산충혼탑 모형
사진12. 부산충혼탑 모형

1980년대 들어서 김중업은 기념비 건물을 설계하는데, ‘문’아니면 ‘탑’의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실현된 건물은 탑의 형태로 부산 충혼탑, 문의 형대로는 유작인 올림픽 평화의 문이다. 특히나 부산 충혼탑은 부산시가 지금의 장소에 충혼탑을 세우기로 결정한 뒤 건축가 김중업에게 의뢰하게 된다. 현대어로 말하면 지명설계인 것이다. 그 전에 부산의 조각가와 건축가들에게 탑의 디자인을 맡겼지만 자문을 구했던 김중업이 적임자가 된 것이다.

김중업은 부산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왔다가 유네스코 예술가 대회의 한국대표로 선발되어 베니스로 떠났다가, 르 코르뷔지에의 사사를 받고 귀국 후 부산대학교 구 본관, 유엔묘지 정문, 채플 등을 설계하며 부산을 자주 오갔던 것이다. 1970년대의 냉혹한 시기를 피해 외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귀국해서 맡은 작업이었다.

사진13. 충혼탑 원륜
사진13. 충혼탑 원륜

한국 전통 탑에서 모티브를 발견하고 이것을 현대화시켜 디자인 했다. 그가 생각한 처음 이미지는 한 개의 원륜을 중심으로 9개의 벽체가 높이 받쳐 올린다는 것이다. 청동으로 제작된 원륜의 상부는 아홉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혼백이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탑이 옥개석처럼 상륜부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9개의 벽체은 동양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돈다’라고 하는데 죽음 이후의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여 하늘은 아홉으로 나누어 가장 높은 곳을 구천(九天)이라 부르고, 땅을 아홉으로 나누어 가장 깊은 곳을 구천(九泉)이라고 부른다. 이 9개의 벽체는 상륜부를 통해 모아져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14. 충혼탑 상륜부
사진14. 충혼탑 상륜부
사진15. 원형돔 내부
사진15. 원형돔 내부

원형돔 내부에는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사진16. 원형돔 출입문
사진16. 원형돔 출입문

이 원형돔 안에서는 아주 엄숙해진다.

사진17. 콘크리트 치핑 마감
사진17. 콘크리트 치핑 마감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날 것 그대로의 콘크리트를 가공하는 방법으로 치핑마감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거친 느낌의 마감이 좋다.

사진18. 부산전경
사진18. 부산전경

충혼탑을 뒤로하고 바라보면 부산의 전경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부산역과 남항, 남항대교, 정면으로 보이는 영도, 가운데 용두산공원,부산타워, 오른쪽으로 승학산과 구덕산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19. 부산 민주화운동의 성지
사진19. 부산 민주화운동의 성지

부산 충혼탑이 위치한 중앙공원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성지이다. 충혼탑을 비롯해, 가까이는 87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민주항쟁 기념관(위 사진의 중앙, 조형물은 민주의 횃불)과 부산 4.19광장, 부산광복기념관, 한국전쟁 대한해협 승전비가 있다. 특별한 부산여행을 계획 한다면 다녀와 보기를 추천한다.

이번에는 김중업의 초기작인 부산대학교 인문관(구 본관)과 그의 후기작인 충혼탑을 둘러보았다. 

다음은 재한유엔기념공원(UN묘지), 경남문화예술회관(진주)을 보고자 한다. 한 번에 싣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두 번으로 나누어서 부산, 경남의 답사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2022년 3월 29일. 희망을 짓는 건축사 푸리. 한종훈

『참고자료』

김중업박물관 도록(2015, 김중업 건축박물관)

PA01(1997, 건축세계(주))

김중업, 르꼬르뷔지에를 만나다(2018, 김중업 건축박물관)

김중업 다이얼로그(2018, 국립현대미술관, 김중업 건축박물관)

김중업 건축론, 시적울림의 세계(2003, 정인하)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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