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파리 프로젝트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예술과 문화의 도시이며, 도시계획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파리는 19세기 말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에 의해 계획되고 정비된 이후, 현재까지 그 규모와 공간구조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파리는 1964년에 제정된 관련법에 의해 도시의 면적이 105㎢로 한정되었고, 파리를 둘러싼 순환고속도로에 의해 도시 외곽의 경계가 명확해짐에 따라 공간적인 한계성을 지닌 도시가 되었다. 이와 같은 도시공간의 한계성과 관련법의 경직성은 파리라는 도시의 경쟁력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그랑 파리 프로젝트’ 추진을 공표하였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와 수도권에 해당하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의 혁신적인 광역화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지역을 활성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세계적인 글로벌 도시가 되어 프랑스에 기여하는 것이다. 파리가 ‘그랑 파리 프로젝트’를 통해 영국의 런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들과 경쟁하여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고자 하였듯이, 우리나라의 서울과 수도권도 동북아시아에서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글에서는 ‘그랑 파리 프로젝트’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그랑 파리 프로젝트’가 어떤 배경에서 추진되었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도시정책은 지역 간의 불균형을 확대시켰으며, 교통과 주거, 삶의 질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초래했다. 특히 파리와 수도권은 공공 공간과 적절한 교통수단의 부족으로 인하여 상호 간의 단절 현상이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파리의 도시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수도권 자체의 발전 역량도 저하 되었다. 지역의 발전 역량이 저하됨에 따라 대기업의 유치부재, 생활 주택의 부족, 심각한 교통난 등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이러한 원인으로 파리와 수도권은 20년 전부터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은 내부적인 문제들은 ‘그랑 파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는 일차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통합된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 2012년 교토의정서 체제 이후를 대비하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필요성 등과 같은 외부적인 문제들은 ‘그랑 파리 프로젝트’ 추진의 이차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이상에서 언급한 대내외적인 문제와 필요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리와 ‘일-드-프랑스(Île-de-France)’의 일부를 혁신적으로 광역화함으로써 파리가 21세기를 대표하는 대도시의 모델이 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구, 주거, 경제, 산업, 교통, 사회 통합에 해당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파리 영토면적의 7배인 814㎢의 면적을 형성하여 광역화를 추진하고, 이곳에 20세 미만의 160만 명의 미성년자를 포함 7백만 명 이상의 시민이 거주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업무시설(3,800,000㎡) 면적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여 450,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창조적 경제를 추구하고 이를 통하여 유럽 최대의 41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과 활동들은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데 그 추진 과정은 크게 2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2007년에 추진이 공표된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2010년을 기점으로 1단계와 2단계로 추진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1단계(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제안과 공유, 논의를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 시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2단계(2011년부터 현재까지)는 1단계에서 최종 결정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많은 실행들이 전개되고 있는 시기로 볼 수 있다.

먼저, 1단계의 추진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007년 7월, ‘그랑 파리 프로젝트’가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공표되었고, 2008년 3월에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10개의 국내외 팀이 선정되었다. 2009년 4월에는 10개 팀의 프로젝트 제안서를 접수하여 대국민 공람을 거쳤으며, 2009년 12월에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결정 하였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실제적인 주요 내용은 10개 팀이 공모에 참여하여 제안한 내용들이다. 영국의 Rogers Stirk Harbour & Partners는 ‘압축 & 연계 도시’라는 주제로 참여하였고, 이탈리아의 Studio 09은 ‘다공도시’라는 주제로, 독일 LIN은 ‘밀집되고 경관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주제로 네덜란드의 MVRDV는 ‘좀 더 작은 파리’라는 독특한 주제로 공모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Groupe Descartes은 ‘변화하는 메트로폴리탄을 위한 90개의 플랜’이라는 주제로, Nouvel, Duthilleul, Cantal-Dupart은 ‘탄생과 부활, 파리 시민의 백가지 행복’이라는 주제로 제안하는 등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이러한 제안들은 구체적으로 거버넌스, 공간구조, 교통수단, 환경,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방향성들을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제안과 공유의 과정과 방법이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파리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광역화된 파리가 지역 특성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 방향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동쪽지역은 ‘이미지와 미디어’의 거점도시로, 서쪽지역인 파리-라데팡스 축은 금융도시로, 남쪽지역의 싸클레의는 바이오 클러스터 연구도시로, 북쪽지역은 샤를르 드 골 공항과 브르제 공항을 중심으로 관광 및 디지털 예술 산업도시로 설정하여 국제적인 도시계획 및 건축 전문가로부터 다양한 제안을 받았다. 국제 공모를 통해 제안 받은 아이디어들은 시민들에게 전시라는 방식으로 공개되어 공유되었고, 이를 통하여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단계의 마지막 과정은 10개 팀이 제안한 프로젝트와 대국민 공람을 거쳐 설정된 방향과 계획이 추진될 수 있도록 법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에 2010년 6월에 “LOI n° 2010-597 du 3 juin 2010 relative au Grand Paris”을 제정하여 추진 2단계가 원활히 이행되도록 하였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예시, https://fr.yougov.com/news/2019/11/28/le-grand-paris-express-un-projet-qui-plait/에서 발췌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예시, https://fr.yougov.com/news/2019/11/28/le-grand-paris-express-un-projet-qui-plait/에서 발췌

2단계는 1단계의 제안들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계획안을 결정하고, 그것들을 실행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들이다. 이 과정에서는 프로젝트 진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일 먼저 관련법을 제정하였고, 다음으로 행정기관의 시스템을 통합하였으며, 필요한 관련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또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안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범 프로젝트와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실행하기도 하였으며, 교통망의 확산과 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와 관련한 주요 법안은 크게 행정관련 법안과 영토 관련 법안이 있다. 행정관련 법안은 공공영토 사업의 현대화와 광역도시 확정에 관한 법안이다. 이 법안을 통하여 2014년 1월에 그랑 파리지역에 속해 있던 몇몇의 파리 기초자치구역들과 수도권에 속해 있던 3지역의 행정구역을 폐지하기로 결정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광역 파리 지역에서는 기존의 행정구역 관련법보다 그랑 파리 관련법이 우선함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토관련 법안은 공공 영토 조직에 대한 법안으로 ‘NOTRe 법’이라 불린다. 이 법안은 은 ‘국제적 또는 국가 차원의 주요 문화 및 스포츠 시설의 건설, 개발, 유지 및 운영’에 대해 광역 파리에 관할권을 부여하며, ‘정부는 광역 파리의 요청에 따라 주요 시설 및 기반 시설의 개발, 유지 보수 및 관리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특정지역의 논리가 중앙정부의 논리에 우선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음은 행정기관의 통합 시스템화 사례이다. 프랑스의 행정구역은 코뮌, 데파르트망, 레지옹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중 가장 작은 기초자치단체가 코뮌이다. 프랑스의 과도한 코뮌의 분리는 비효율적 지방행정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이 같이 복잡한 행정 구조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작은 코뮌을 재정리해 글로벌 거버넌스가 가능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시범 지역 프로젝트나 ‘그랑 파리를 창조하자’와 같은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2단계의 추진단계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교통망의 확산과 변화이다. 수도권 개발의 책임자인 크리스티안 블랑(Christian Blanc)은 파리 주변에 주요 경제 중심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고, 이 허브들을 연결하는 효율적인 대중 교통망인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Grand Paris Express)’의 구축을 제안했다.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는 총 길이가 160㎞에 달하며, 57개의 역을 통해 하루 2백만 명의 승객을 나르는 대중교통 프로젝트로써 2017년에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아크 익스프레스(Arc Express)’라는 60㎞의 순환 지하철과 정부가 계획한 130㎞의 ‘그랑 위뜨(Grand Huit)’라고 불리는 2중 순환 지하 지하철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차적으로 개발하여 2030년에 최종 완성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철도 교통의 포화, 불규칙적인 서비스,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부족, 파리외곽지역에서의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90%의 ‘일-드-프랑스’ 주민들이 역에서 2㎞ 이내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의 궁극적인 창설 목적은 ‘일-드-프랑스’의 도시들을 통일되고 모범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역 간의 새로운 연결 고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르 아브르’까지의 도시 확장을 목표로 하는 그랑 파리 계획은 광역화된 파리를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경제적 기점으로 삼아 파리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글로벌 계획이다. 이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실행요소로서 교통망 신설 및 개선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를 통하여 수도권에 있는 공항, 역 등의 이동수단을 재정비하고, 대중 교통망을 매개체로 하여 파리의 중심과 ‘일-드-프랑스’ 지역의 주요 도시, 과학, 기술, 경제, 스포츠 및 문화 센터 등을 연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역세권 주변 지역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할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의 발전으로 주택, 토지이용, 경제발전 등 다방면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이로써 지역 비즈니스가 활성화 되고, 중소기업 및 구직자에게 다양한 기회 제공되며, 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혁신적으로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 완공 일정(2024~2030). 르 파리지엥에서 발췌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 완공 일정(2024~2030). 르 파리지엥에서 발췌

지금까지 살펴본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과 목적, 추진 단계의 내용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랑 파리 프로젝트’가 일차적으로는 도시 경제와 삶의 질적 부분을 개선하려는 현재적 문제와 맞닿아 있고, 이차적으로는 환경과 지속가능한 가치라는 미래적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랑 파리 프로젝트’는 삶의 질, 경제 발전, 환경 보전, 지속가능성 같은 핵심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라는 것이며, 투명하고 열린 추진 과정과 방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국가적 프로젝트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광범위한 도시개발은 관·민이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며, 시민들의 삶의 질적 수준 향상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공감대 없이는 만족스러운 개발이 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서울과 수도권이 지닌 다양한 현실적 문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계, 인구감소와 변화하는 가치관, 그리고 환경과 미래 가치 등을 고려해 본다면 ‘그랑 파리 프로젝트’가 지니는 의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필]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한양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 박사

프랑스 국립건축6대학교 건축설계 석사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학사

 

한국건축사/프랑스국가공인건축사

렌조피아노빌딩워크샵(프랑스, 파리) 근무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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