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시관 이야기 1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도시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건축물은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도시의 정체성을 지닌 역사적 건축물에 의해 도시 이미지가 형성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도시의 정체성이나 역사성과는 상관없는 아주 특이한 하나의 건축물이 랜드마크가 되면서 그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케빈 린치(Kevin Lynch)는 그의 저서 “도시의 이미지(Image of City. 1960)”에서 ‘도로(Path)’, ‘지구(District)’, ‘변두리(Edge)’, ‘결절점(Node)’, ‘랜드마크(Landmark)’를 도시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건축물과 상관성이 가장 많은 요소는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랜드마크(Landmark)’란 사람들이 그 지역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시설물을 말한다. 이러한 랜드마크는 관찰자가 외부에서 바라보는 주위 경관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쉽게 구별된다. 그래서 랜드마크가 통로의 교차점에 위치하면 보다 강한 이미지 요소로 작용하는데, 탑이나 오벨리스크 등의 구조물들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는 도시의 랜드마크를 특정 건축물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물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7년에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건축물은 매우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적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 발전에도 다양한 의미를 제공했다. 그런 이유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적 형태와 재료의 차원뿐만 아니라, 도시 재생과 도시 이미지 차원에서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은 랜드마크적 건축물에 대해 도시 재생의 차원보다는 건축적 의미를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완공된 지 20년이 넘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아직까지도 그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 이후에 유행했던 ‘구성주의’와 ‘해체주의’ 사조에 대하여 간략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술과 문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새로운 경향들이 태동하여 기존의 주류 현상과 충돌하면서 발전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경향들은 자연스럽게 출현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주류 현상에 대한 의도적인 반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나타난 경향들을 우리는 ‘~주의’ 또는 ‘~사조’라고 부르는데, 구성주의나 해체주의도 이러한 차원에서 분류된 경향들이다.

현대 건축의 다양성과 개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체주의 건축’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1920년대에 ‘구성주의’로 태동했던 ‘해체주의 건축’은 초기에는 단지 페이퍼 건축으로만 존재했지만,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20세기 후반부터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현된 건축물로서 건립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 건축계를 석권하고 있는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해체주의 건축은 조각 같은 건축물의 형상, 설계 과정에서의 비선형 기법, 구조 및 포장 등 건축 요소에 왜곡과 혼란을 일으키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응용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해체주의 건축이 현대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다채로운 문화예술 장르와 어우러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복합예술시대의 도래, 통신혁명에 의한 정보의 상품화, 문화성 그리고 정신성을 강조하는 정신 지향적 생활상, 이피족이나 여피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세대의 등장, 개성을 추구하고 외식여가를 즐기는 개성 르네상스, 가전제품의 자동화에 의한 생활양식의 혁신, 신소재의 혁명 등은 현대 사회의 특성적 양상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특성들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하이테크 건축이나 해체주의 건축 같은 특이한 분위기의 건축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선도적으로 실현한 대표적인 해체주의 건축가로는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렘 쿨하스(Rem Koolhaas)’, ‘자하 하디드(Zaha Hadid)’,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프랑스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이들 중에서 프랭크 게리에 의하여 설계되었는데, 이번에는 프랑크 게리와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노장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는 1929년생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이다. 학창시절 그가 만났던 예술가들은 그의 건축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파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건축을 통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그의 건축 언어를 구축하고 실현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을 수상한 프랑크 게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하여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 서울의 ‘루이뷔통 매장’ 등이 있다.

프랑크 게리가 추구하는 건축 세계를 요약해 보면, 첫째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자연 이미지를 건축디자인에 그대로 반영하려는 시도이고, 둘째는 규칙과 질서에 얽매여 있는 기존의 사조 형식을 깨뜨리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형태를 선호하는 것이며, 셋째는 순간적인 동적 변화 속에 나타나는 우연적 형태의 창출로 정의할 수 있다. 그는 순간적인 동적 변화 속에서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자적 형태를 찾으려고 하였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변화되는 재료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형태들을 그의 디자인에 반영하였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틀에 놓여있는 규칙과 질서를 초월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프랑크 게리의 건축 철학이다. 이러한 프랭크 게리의 건축 철학은 해체주의가 추구해왔던 사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며, 이런 철학이 반영된 실험적 건축 계획은 도시의 랜드마크적 요소가 되는데 일맥상통하고 있다.

루이뷔통 재단의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2001년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하고 난 후, 프랭크 게리를 만나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2006년에는 파리시와 토지의 공공 점유에 대해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1헥타르의 부지면적을 55년 동안 임대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4년 10월 개관할 때까지 총 6여 년간 건축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이슈가 발생하였다. 2006년 계획 발표 당시 총사업비는 약 1억 유로로 추산되었으나, 완공 후에는 7배가 넘는 7억 8000만 유로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건축물에 대한 기술적 비용 지불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게 해 준다. 2007년에는 건축 허가를 받았지만 블론뉴 숲의 통행권에 대한 법정 다툼이 있기도 하였다. 이렇게 많은 이슈 속에 진행된 프로젝트는 완공되는 순간까지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쟝 누벨(Jean Nouvel)의 지지가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 건축물 중 하나인 파리의 ‘그랑 팔레(Grand Palais)’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1893년에 ‘아크리마타시옹 정원’1)에 세워진 유리온실 형태의 ‘팔마리움(Palmarium)’도 모티브로 하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랑 팔레’와 ‘팔마리움’의 공통점은 유리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크 게리는 파리에 예술과 문화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내용적으로는 19세기 프랑스 문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표현적으로는 19세기 건축물의 특징이었던 유리의 투명함과 가벼움이라는 특성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현대 기술이 제공하는 첨단의 기술과 결합되면서 예술적인 동선이 강조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건립된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파리 서쪽의 유명한 공원인 블론뉴 숲(Bois de Boulogne)의 아크리마타시옹 정원(Jardin d'Acclimatation) 옆에 위치하고 있다.


1) 아크리마타시옹 정원(jardin d'acclimatation): 아크리마타시옹이란 ‘순응’을 뜻하는 말로써 개별 생물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뜻한다. 1858년 나폴레옹 3세는 "자연 환경에서 모든 나라의 유용한 동물을 전시하고 즐거움을 주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 Bois de Boulogne을 따라 위치한 15헥타르의 땅을 동물학자 이지도레 조푸와 셍-일레르(Isidore Geoffroy Saint-Hilaire)에게 양도했다. 이곳에 건설된 과학적이고 재미있는 식물원은 낙타, 캥거루, 기린 등과 같은 이국적인 식물과 동물을 대나무와 바나나 나무를 포함한 조경 환경을 그 당시 녹지공간이 부족했던 파리에 제공하였다. 100,000마리 이상의 동물이 사는 새로운 레저 센터가 설치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1995년에 LVMH Group(Moët Hennessy Louis Vuitton)이 20년 장기임대를 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2015년도 두 번째 장기임대에 합의, 본격적인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스포츠와 산책의 개념으로 하는 자연, 문화, 스포츠, 게임 등의 4개 영역으로 그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크리마타시옹 정원에서 바라본 루이뷔통재단의 전경 (사진=어정연)
아크리마타시옹 정원에서 바라본 루이뷔통재단의 전경 (사진=어정연)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는 블론뉴 숲은 나폴레옹 3세 시대에 활성화된 파리 서쪽에 위치한 대표적인 숲이다. 면적 846헥타르의 블론뉴 숲은 28km의 둘레길과 15km의 자전거 도로망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있는 아크리마타시옹 정원은 독특하게도 영국식 정원의 모델을 따라 설계되었다.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기존에 건축되어 있던 볼링장의 면적과 높이를 감안하여 계획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2층 규모의 7,000㎡의 연면적, 그리고 3,850㎡의 다양한 크기의 갤러리 11개와 350석 규모의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이뷔통재단의 주출입구 전경(사진=어정연)
루이뷔통재단의 주출입구 전경(사진=어정연)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파리의 문화적 소명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대상이 되기 위해 웅장한 선박을 디자인 모티브로 하였다고 한다. 12개의 돛을 지닌 이 웅장한 선박은 매우 디테일하고 다양하게 설계된 3,600개의 유리 패널과 19,000개의 덕탈(Ductal;섬유 강화 콘크리트) 패널을 주요한 요소로 표현되었다. 이미 설정된 높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유리 구조물의 높이를 높여야 했으며, 이 결과로 생긴 유리 건물은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오른 범선의 돛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 이 유리 돛은 흰색의 꽃이 만발한 테라스가 있는 일련의 모양인 ‘빙산’을 감싸고 있다. 건물의 전체 볼륨을 만들고 있는 ‘빙산’은 순백색으로 디자인하여 기존 건축의 경계를 허물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독특한 건물을 창조하였다. 프랭크 게리는 숲과 정원 사이의 자연 환경에 쉽게 어울리면서 동시에 빛과 거울 효과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빛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지상층의 수공간에서 바라본 전경(사진=어정연)
지상층의 수공간에서 바라본 전경(사진=어정연)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디자인 프로세스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 건축물은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건설되었는데, 지속가능한 개발의 생태학적이고 인간적 부분을 모든 계획 단계에서 고려하고 배려하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 초기 개념부터 최종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술 파트너들이 연합하여 진행되었다. 설계에서 제안한 곡선과 투영에 대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하여 특수한 유리 제조 과정이 필요했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특수 용광로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이다.

옥상 테라스 전경(유리 패널과 덕탈 패널의 조화)(사진=어정연)
옥상 테라스 전경(유리 패널과 덕탈 패널의 조화)(사진=어정연)

또한 4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항공 산업에 특별히 적용된 3D 설계 소프트웨어인 ‘디지털 프로젝트(Digital Project)’를 사용하여 3D 디지털 모델 설계에 참여하였다는 점도 특이하며, 파사드 디자인은 컴퓨터 모델링을 통한 시뮬레이션 작업 이후 산업용 로봇에 의해 성형되었다는 점도 프로세스 차원에서는 매우 혁신적이다. 실내 공간 또한 유명 아티스트들에 의하여 계획되어졌으며, 대표적으로는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의 ‘스펙트럼 8(Spectrum VIII)’과 올라포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인사이드 더 호리즌(Inside the Horizon)’등이 있다.

지하층에 설치된 올라포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인사이드 더 호리즌(Inside the Horizon) 작품(사진=어정연)
지하층에 설치된 올라포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인사이드 더 호리즌(Inside the Horizon) 작품(사진=어정연)
지하층 내부에 설치된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의 스펙트럼 8(Spectrum VIII) 작품(사진=어정연)
지하층 내부에 설치된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의 스펙트럼 8(Spectrum VIII) 작품(사진=어정연)

이 외에도 루이뷔통재단의 아르노 대표의 주도로 다양한 전시 작품들이 유리 공간의 내부를 화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은 개관한 지 7여 년 만에 21세기 건축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루이뷔통 재단 전시관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체주의 성향의 건축물들은 사회문화적 변화와 과학 기술의 발전과 융합하면서 더욱 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로 각인되어가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지만 이제는 실제로 건립되는 이 건축물들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눈에 띄는 형태의 건축물로 도시 시각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기술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건축물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소형 건축물에서도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변화와 시도들은 더 많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프로필]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한양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 박사

프랑스 국립건축6대학교 건축설계 석사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학사

 

한국건축사/프랑스국가공인건축사

 

렌조피아노빌딩워크샵(프랑스, 파리) 근무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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