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

(자료제공=사이 출판사 )
(자료제공=사이 출판사 )

▣ <장소애>를 강조하는, 30년 넘게 사랑받는 인문지리학의 고전

이 책은 1930년 중국 톈진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 지리학자이자 세계적으로 인문지리학의 대가로 인정받으며 국제지리학연합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한 지리학자 이-푸 투안의 대표작이다. 1977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로 40년 가까이 독자들이 끊임없이 찾는 인문지리학의 고전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간과 장소는 명확히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정의를 대비시켜 구분 짓고 있고, 사람과 장소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뜻하는 <장소애(場所愛)>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저자는 공간과 장소에서 우리 인간이 겪는 <경험>과 그곳에서의 우리의 <감정>을 중요시한다. 특히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들 때, 즉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 그곳은 <장소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을 그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적(humanistic) 지리학> 시점으로, 우리의 일상적이고 미묘한 삶의 경험들이 장소에 대한 우리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즉 이 책은 <공간과 장소의 대비>를 통해 <인간과 장소 간의 따듯한 유대감>, 즉 장소애를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장소애>라는 개념과 용어를 처음 만들어 소개한 학자

저자는 특히,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topos(토포스)>와 사랑이라는 의미의 <philia(필리아)>를 합쳐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이기도 한다. 토포필리아를 우리말로 옮기면 <장소애>가 된다. 장소에 대한 애착, 장소와의 애틋한 정서적 유대감을 뜻하는 <장소애>라는 개념과 그 용어를 처음 소개한 저자는 『토포필리아』라는 동명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자는 공간과 장소 중 특히 <장소>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면서 연구해 왔으며, 이 책에서는 인간의 <장소에 대한 애착>을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다.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

저자는 이 책에서 공간과 장소를 각각 비교하면서 공간의 특성을, 장소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문학, 심리학, 역사, 인류학, 건축학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부시맨부터 북미 대륙의 인디언, 태평양 섬에 거주하는 열대우림 원주민, 북극의 에스키모인들, 그리고 현대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의 공간감과 장소감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막심 고리키, 알베르 카뮈, 아우구스티누스, 생텍쥐페리, 도리스 레싱, 테네시 윌리엄스 등의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장소에 대한 열망> 등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이 공간과 장소를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이 한 장소에 <고유한 정체성과 분위기>를 부여하는지, 우리를 공간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무엇인지, 때로는 오히려 공간적 과밀함이 즐거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장소에 대한 애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애틋한 장소가 되어줄 수 있는지, 아이들은 왜 테이블 아래를 좋아하는지, 왜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지, 또한 고향은 왜 <고요한 애착>의 대상이 되는지, 공간의 내부와 외부의 감정의 온도차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왜 우리는 <자신만의 장소>를 갈망하는지, 장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힘>을 주는지, 누군가에게는 광활한 곳이 왜 누군가에게는 황량한 곳이 되는지 등을 노학자다운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 이 책의 핵심 주제: <공간과 장소>, 그 둘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지금까지도 <공간>과 <장소>를 마치 같은 의미로 알고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 공간

공간은 <움직임(movement)>이 일어나는 곳이다.

공간은 <자유>를, <개방성>을, <모험>을, <위협>을 상징한다.

공간은 생존의 조건이자 심리적 욕구의 대상이며 <부와 권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간은 추상적이고, 낯설고, 미완성이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따라서, 공간은 <의미가 결여된 백지>와 같은 곳이다.

■ 장소

장소는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이다.

장소는 <안전>을, <안정>을, <안식처>를 상징한다.

장소는 일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행위들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곳>이다.

장소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애정과 애착의 대상이 되는 <가치의 중심지>이다.

장소는 의미로 가득 찬 곳이다.

따라서, 장소는 <인간화된 공간>이다.

■ 공간은 언제, 어떻게 장소로 발전되는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애틋한 마음이 깃든 장소>도 필요하다. 저자는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고 말한다. 즉 풍부한 가능성을 품고는 있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추상적이고 별다른 특징이 없던 공간은 그곳에서의 개개인의 삶을 통해 의미로 가득 찬 애틋하고 구체적이고 친밀한 장소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따라서 <장소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장소가 되는 곳은 어디인가?

부모의 품, 놀이터, 학교에서 나의 자리, 작은 나무 밑 그늘진 곳, 집, 동네, 고향, 도시, 국가, 신전, 심지어 애정이 깃든 사물이나 사람도 우리에게 하나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와 근대 민족국가 또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는 <구체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 장소는 결국 우리 삶의 <평온한 중심지>,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처음에 장소는 허기, 갈증, 휴식, 출산 같은 생물학적 욕구가 충족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점차 장소는 안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삶의 <평온한 중심지>가 된다. 공간과 달리 장소엔 의미와 소통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장소의 가치는 특별한 <인간관계>의 친밀감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장소에서 우리는 삶을 이어나간다.

▣ 우리의 삶은 <안정과 모험>, <애착과 자유>, <공간과 장소> 사이에서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

공간과 장소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다. 공간과 장소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공간과 장소는 서로의 대비를 통해 정의된다. 우리는 장소의 안전과 안정을 통해 공간의 개방성과 자유, 위협을 인식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복잡한 방식으로 공간과 장소에 반응한다.

즉, 우리 인간은 <안식처가 되는 장소>를 원하면서도 <모험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또한 <개방된 공간에서는 장소를, 안전한 장소에서는 광활한 공간>을 열망한다. 우리는 장소에 <애착>을 갖으면서도 동시에 공간을 <갈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삶은 <안정과 모험>, <애착과 자유>, <공간과 장소> 사이에서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자료제공=사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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