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수원화성의 모양을 나뭇잎처럼 만들었다
조선 후기 신도시 수원화성공사가 시작되자 정조는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하였고 돌아가던 전에 팔달산에 올라가 화서을 내려다 보았다. 공사 관계자들은 정조가 미리 성곽의 형태를 알 수 있도록 성을 쌓을 자리에 깃발을 세워놓았다.
이날이 1794년 1월 15일 정조는 팔달산에 올라가 화성 전체를 살펴보고 내려와 신하들에게 " 성의 모양이 이미 버들잎 모양을 하고 있고, 또 천(川)자 모양으로 구불구불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조가 이야기 한 나뭇잎 모양은 남아있는 '화성전도'를 보면 그 모양을 쉽게 알 수 있다.
팔달산의 남쪽에 있는 화양루(서남각루)가 나뭇잎의 줄기가 되고 성의 내부가 잎이 되는 것이다.
천(川)가 모양은 남수문과 남공심돈 사이가 3번 꺾어져 있어 '川'자와 같다.
정조가 유천(柳川, 버드내)에 그렇게 집착한 것은 아마도 이 물이 흘러 사도세자가 있는 현륭원이 있는 화산(花山)의 옆으로 지나가기에 중요하게 여기고 "유천"이란 의미를 성에 담고자 한 것 보인다.
유천의 물이 화성에 들어오는 곳이 북수문(화홍문)인데 바로 동쪽 언덕에는 방화수류정(訪花水柳亭)은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뜻을 가지고 있다. 정조가 유천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화성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건물에 그 이름을 넣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현재 버드나무는 꽃가루가 날린다는 이유로 수원시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민원이 생긴다고 하여 지자체에서 기피식물로 인식되어 도심에서는 사라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천안삼거리 능수버늘 아닌가 싶다. 한 때는 민원의 발생으로 나무가 점점 없어졌는데 지금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시민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천안삼거리에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 수컷 버들을 심고 있다.
지금 수원시의 공식나무는 버드나무가 아닌 소나무이며 버드나무는 수원에서 잊혀 가고 있다. 유천성이 아닌 송성(松城)이 되어버렸다.

현재 '수원화성 안내도'를 보면 나뭇잎의 모습을 연상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수원 화성을 '버드나무 도시'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0년대 화성을 복원하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자랑스런 곳이 되었고 이제는 좀 더 진정성에 가까운 문화유산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