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건축사사무소광장 신만석 회장
㈜건축사사무소광장은 지난 11월 11일 30주년을 맞아 비전선포식을 개최했다. 지난 30년 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향후 비전과 핵심가치를 공유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30년의 신뢰, 새로운 30년의 세움”이라는 슬로건 아래 ㈜건축사사무소광장은 “사람, 도시, 그리고 광장이 함께 세우는 미래의 삶”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처럼 ㈜건축사사무소광장 신만석 회장은 건축이 사람들 곁에서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새로운 비전의 출발점이다. 집과 도시, 자연과 기술, 사람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30년은 더 깊이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건축을 치열하게 고민하겠다는 선언이다.
공급의 시대 속에서도 건축의 가치를 고민하다
신 회장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기 전 10여 년 동안 공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공기업 재직 당시 개별 건축보다는 광역계획을 수립하고, 그 틀 안에 단지 단위의 세부계획을 배치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 5개 신도시 계획 당시 기술지원 업무를 맡아 국토부 승인 과정에 제출되는 단지 계획의 대부분을 검토했다.
당시 국가정책의 모든 방향이 ‘주택 공급’에 맞춰져 있었다. 단시간 내 대량 공급을 목적으로 「주택건설촉진법」과 하위 규정들에 의거, 벽체 두께부터 바닥 두께, 동 배치, 동간 거리, 건물 높이 등 세세한 기준이 제시된 표준화 도면을 단지에 끼워 맞추는 수준이었다. 설계자의 재량권은 좁았고, 효율적인 공급이라는 명목하에 획일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 회장은 설계자의 권한은 제한적이었지만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좋은 건축을 해야한다는 기술자로서의 양심과 마주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주어진 틀을 따르면서도 개선점을 제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부산 당감지구 PM을 맡았을 당시 산악지형에 자리한 대규모 단지였던 만큼, 표준화 도면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많았다. 그래서 신 회장은 현실적인 설계비를 확보하고 현상공모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표준화된 도면을 벗어나 창의적인 설계가 가능해진 계기였다. 결과적으로는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처럼 제도 내에서 유연한 접근을 통해서 건축적인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후 제도개선의 단초가 된 셈이다.
이처럼 공기업에서의 경험은 이후 단지가 놓인 도시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개별 건축물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을 갖게 했다. 또한 공공기관의 엄격한 절차 속에서도 건축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개인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건축으로 세대를 잇는 지혜
신 회장은 주거가 삶의 질보다는 자산 가치와 직결된 구조인 점이 현재의 우리 건축 현실이면서 한계라고 평가했다. 공기업을 나와 가장 먼저 전원주택 단지 개발에 주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주거의 본질적인 원천으로서 땅을 밟고 자연을 느끼며 사는 환경이 되려면 단독주택에서 해답을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20여 년 단독주택에서 생활해 오고 있는 그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마당과 골목과 같은 공간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반려동물 인구 증가와 함께 단독주택 수요가 높아지는 흐름에도 또한 주거에 대한 가치의 관점이 달라지고 있는 신호라고 했다.
“우리 전통 건축의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나 여백, 자연과의 공존에 무게를 두어 발전해왔다. 건물과 사람, 공간과 자연, 내부와 외부 사이의 여백을 적절히 조율하는 미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순한 전통의 답습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는 창조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골목 문화나 가치 있는 건축물도 너무 쉽게 없애버린다. 이런 면에서 건축사의 역할이 공고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발주자, 건축주 위주로 흘러간다. 세계적인 건축을 지향한다면 우리 후배들도 좋은 건축문화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후배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만성적인 예산 부족과 경직된 행정 속에서는 창의적인 설계안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 역시 한국 건축의 역량 축적을 가로막고 있다. 좋은 건축은 예산 현실화와 제도 개선을 통해 공정한 경쟁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신 회장은 건축사의 역할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AI, BIM, 스마트 건설 등 첨단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분야 간 협업을 이끌어내는 조정 하는 힘은 건축사에게 필수적 역량이다. 미래의 건축사는 도시와 사회, 기술과 인간을 연결하는 종합 코디네이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대 간 경험의 전승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는 조급해하지 않고 과정을 보여주고, 젊은 세대는 열린 태도로 배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경험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멘토링과 세대 간 협업 프로젝트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경험은 나눌 때 힘을 발휘하고, 그것이 업계의 저력을 쌓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순례길 위에서 찾은 인생의 변속
신 회장은 최근 외부의 여러 일들에 휘말리면서 피폐해진 마음을 들여보고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묵묵히 걸었다. 여정의 막바지 이틀 정도 남겨둔 시점에도 여전히 길은 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순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큰마음을 먹어야만 완주할 수 있을 것 같고, 깨달음을 꼭 얻어야 한다는 비장함도 있었다.”
“우연히 길 위에서 유모차를 끌고 걷는 한 가족을 만났다. 또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도 무리지어 가볍고 즐겁게 걷고 있었다. 나로서는 고심하고 큰 결심 끝에, 두려움 속에 온 이 길이 그들에게는 유모차 속 아이의 속도에 맞춘 여유로운 산책이고, 주말 오후의 가벼운 소풍처럼 이 길을 즐기고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 나를 흔들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면서 마음을 묵직하게 울렸다. 그동안 한 기어에만 고정된 채 엔진을 과열시키며 달려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속도를 쫓느라 변속해야 할 때를 지나쳐 버린 것이다. 순례길에서조차 가속도가 붙은 채 완주라는 목표 달성만을 위해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찾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생에는 소풍처럼 가볍게 숨 쉬며 걷는 유연한 변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신 회장은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리셋했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힘을 비축하고, 행복이 충만한 순간에는 잠시 멈춰 서기도 해야 인생은 고행이 아닌 소풍이 된다는 것을 새겼다. 질주 같은 레이싱 대신 상황에 맞게 변속하듯 리듬을 조절하며 한결 가벼운 여정을 시작했다.
신 회장은 순례를 마치고 45일 동안 828km를 걸으며 도시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돈하고, 건축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담담하게 성찰하는 기록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느린 순례 여정 속에서 ‘속도가 아닌 시간’의 개념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된 만큼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걸으면서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했다. 이번에 출간한 『길 위의 건축가들』은 그 깨달음의 기록이며, 건축이란 결국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을 공간에 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신 회장은 앞으로도 건축사라는 직능이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Buen Camino!”
“그 축복이 우리의 건축 길과 인생길 위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 (주)건축사사무소광장 주요 프로젝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