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건축사사무소 분투기
하하하건축사사무소 고성철 건축사
2025년 건축계는 ‘혹한기’를 관통하고 있다. 불경기, 침체, 빙하기, 생존, 폭망, 불황, 힘들다, 폐업, 공멸, 자포자기, 고통, 버티기 등 경기도건축사회 회원들이 꼽은 키워드들에는 절망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올해가 가장 힘들다”는 말은 매년 반복해왔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전례없는 불확실성이 건축계를 짓누르고 있다.
본지는 2021년, 하하하건축사사무소 고성철 건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료 건축사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경영의 막막함을 덜어내는 연대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2019년 개소 후 1인 건축사사무소 6년 7개월차 , 고 건축사는 어떤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을까?
무경기(無景氣)에도 멈출 수 없는 씨앗 뿌리기
지난 인터뷰 이후 어떻게 성장하고 있었는지 그동안 보내온 치열한 시간들을 들어봤다.
고 건축사는 개업 전까지는 두렵고 막막한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막상 개소하고 보니 문제는 달랐다. 수주, 세금 납부, 외주 대금, 가계 생계까지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매달매달 해결하는 것이 과제가 됐다.
최근에는 “적자가 나더라도 대출로 감당되면 다행”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키워드에 ‘자포자기’가 있었죠? 충분히 그럴만 하다. 다들 침체기라 하지만 실제로는 ‘무경기(無景氣)’에 가깝다. 허가 받은 건도 착공으로 이어지지 않고, 2023년 가을 즈음 바닥을 찍었다 싶었는데 작년과 올해 더 악화됐다. 끝을 알 수 없기에 여전히 막막하고,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고 건축사는 연고 하나 없는 경기도 광주에서 개소했다. 세 아이의 아빠로서 육아 환경을 우선한 선택이었는데, 그만큼 지역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진입해야 했다. 그만큼 개소 이후의 과정은 온전히 홀로 견뎌내야 하는 ‘분투’였다. 블로그 운영과 직접적인 영업 활동은 일견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선택이고 분투의 단면이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고가 없다보니 관계에 의한 수주는 거의 없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는 건축주도 있었고, 저같이 주로 젊은 세대의 광주 지역에 연고가 없는 건축주였다. 그들이 저를 선택한 건 단순한 정보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 건축사의 역할과 설계비의 정당성을 납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체와 SNS의 확산이 건축주의 인식 개선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부분은 분명 희망적이다.”
홍보물을 만들고, 아파트 게시판에 공지도 게시했다. 수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파트 주민자치위원회 회장님을 만나 용도변경 자문을 해드리면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량적 성과는 부족했도 정성적인 의미는 남았다고.
또 사무소 인근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소유주 100여 명에게 홍보물을 발송하기도 했다. 몇몇은 실제 상담과 수주로 이어졌고, 설계와 준공까지 성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건축 시장의 불경기, 무경기의 시그널도 엿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등기부를 보면 대출 비율이 높다. 땅만 사 놓는데 급급한 것이다. 2~3년 동안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땅 주인들도 어려운 것이다. 홍보물을 보냈다 해도 연락이 오는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체감한다."
“오프라인 모임, 페이스북, 블로그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그물을 넓게 펼쳐놓고 있다. 불경기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넓게 씨앗을 뿌리고 있는 중이다.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간간이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체득하다 보니 멈출 수도 없다.”
1인 건축사사무소, 업무 다각화의 한계
고 건축사는 개소 이후 지금까지 직원을 두지 않고 1인 건축사사무소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고객 대응력과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업무의 폭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동안은 주로 민간 건축물 업무를 맡아왔다. 대부분의 건축사사무소들처럼 필요한 부분은 외주를 활용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외주는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절약됐으나 비용은 다시 부담으로 돌아왔고, 결국 건축주와의 상담 과정에서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찾는 편이다.
최근 불경기를 반영하듯 입찰과 공모에 몰리는 분위기가 강해졌지만 고 건축사는 여전히 민간 건축물 업무에 주력하고 있었다. 업무의 바운더리를 넓히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6~7년 하다 보니 익숙한 일만 하게 되더라. 무엇보다 1인 건축사사무소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민간, 공공, 현상공모 등을 다각적으로 대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한두 가지 영역만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규모 확대 없이는 업역의 다각화도 어렵다.”
올해 초 처음으로 광주시청 어린이 보육시설 대수선 공공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민간 업무만 해오다 선택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설계 자체는 익숙했지만, 공공업무는 행정절차와 매뉴얼을 충족해야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공공업무를 할 수 있었던 건 민간업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7년차의 가장 큰 두려움은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공업무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변화없이 제자리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7년 차인 그는 공공업무에서는 사실상 신입과 다름없었다. 다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다음 기회를 대비해 공공업무의 절차와 사이클을 분석하고, 자체 매뉴얼로 정리해 두었다.
입찰이나 현상설계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도 설명했다. 민간업무가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현상설계를 위해서 일정기간 올인하고 있는데, 그 시점에 민간 수주가 발생하면 공모를 중단해야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쉽다. 이는 1인 건축사사무소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과제들을 끌고 갈 수 없는 구조적인 제약을 잘 보여준다. 결국 1인 건축사사무소의 업역의 다각화는 규모 성장과 직결된 과제이다. 직원을 고용했을 때의 수지타산, 운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만큼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건축사 '경험'이 곧 경쟁력, 그 기회 조차 줄어
업무 환경의 고도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시점
오프라인 모임은 오프 더 레코드 수준으로 와일드하다. 적나라한 현실과 날 것 그대로의 현장 이야기가 공유되는 매력이 있다. 더욱 절박하달까. 건축의 현실, 팩트를 더 리얼하게 나눈다. 개소를 고민하는 건축사들에게는 특히 절박한 조언의 장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이 모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연 2회 건축사 자격시험 시행 후 7년 동안 8,000여 명이 배출됐다. 이는 근 15년 동안 배출되었던 수와 맞먹는다. 여기에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공사비 상승, 대출규제 등으로 신축이 급격히 줄었다. 이처럼 다중 위기가 중첩된 현실 속에서 개소하려는 건축사들도 개소를 보류하는 경우가 늘었고, 결과적으로 오프라인 모임 수요도 크게 줄었다. 요즘은 몇 분이 모인다 하면 어디든 직접 가서 경험을 나눌 생각이다.”
고객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건축사의 경험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건축사의 역량은 다수의 축적된 경험이 필수적이다. 건축사의 성장은 결국 ‘경험’에서 비롯된다.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경험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며, 건축사의 경쟁력이 된다. 독창적으로 차별화된 제안을 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하지만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를 능숙하게 다루며 폭넓게 대응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로서 역량을 갖추는 것도 강점이 된다.
하지만 불경기와 제도적 제약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줄어든 현실은 1인 건축사에게는 장벽이 되고 있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고 건축사는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소 하고나서도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지 못하면 그동안 변화한 법규, 디자인 트렌드를 못 따라가게 되고, 건축주의 취향의 변화에도 대응하기 힘들다. 경력단절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달까. 그나마 저는 코로나 전에 개소해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인맥도 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냉혹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진단했다.
허가권자 지정감리는 1인 건축사사무소에게는 중요한 기회였다. 경력을 쌓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통로였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배정이 쉽지 않다. 갓 개업한 건축사들에게는 성장의 사다리가 끊긴 셈이다. 이러한 경험의 부재도 혹한기를 통과 중인 젊고 경험을 쌓아가려는 건축사들의 어려움 중 하나다.
“사업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 요인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계획은 따로 없다. 계획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이 더 크다. 점점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하루하루 잘 버티는 것이 곧 계획이고 꿈이 되었다.”
1인 건축사사무소는 업무 다각화와 고도화를 모색해야 하지만, 시장 상황과 여건은 녹록치 않다. 오히려 고 건축사는 지금 특별한 성과보다는 하루하루 업무의 근력을 키우며 경험 축적에 고군분투 중이다.
‘아보하’라는 줄임말이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 속에서 평범한 행복과 안온함을 찾는다는 요즘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이다. 지금의 혹한기를 지나 점진적인 성장을 준비하는 하하하건축사사무소의 ‘아보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자 희망일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