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주)건축사사무소 미고 정대진·정은영 건축사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갖는다는 가장 큰 장점은 신뢰다. (주)건축사사무소 미고 정대진·정은영 건축사는 부부이자 동료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하고 있다. 각자의 전문성과 장점이 상대에게 자극과 영감이 되어 그들의 시간을 더욱 단단하게 채워왔다.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가까워졌고, 결혼 후 2013년 개소 초반 동호인 주택 8채를 설계하고 시공도 했던 야호마을 프로젝트를 계기로 고양 호수공원 근처 지금의 자리에 사무소를 열고, 현재까지 (주)건축사사무소 미고가 이어져 오고 있다.
Q. 직업적 전문성과 인간적인 유대에서 타인이 파트너일 때보다 신뢰도가 높을 것 같다. 서로 어떤 점들이 다르고 또 잘 맞나?
정은영 건축사 : 저는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하지만 전공이 건축공학이다보니 상당히 현실적이고 엔지니어적인 마인드가 있다. 반면 정대진 건축사는 미감이 좋고, 셀렉하는 눈이 뛰어나다. 그래서 제가 손으로 하는 스킬적인 부분이 좋다면, 그는 안목이 좋아서 그의 안목을 믿고 한 선택들이 좋았다.
그림 그리는 것과는 또 다르게 저는 상당히 기능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건축에서도 그런 부분에서 정대진 건축사가 미적이고 건축사로서 지향해야 될 포인트를 제시해준다.
정대진 건축사 : 정은영 건축사는 재능이 많아 같은 팀원으로 있을 때 상당히 탐났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같은 팀에 있으니 너무 행복하고 끌렸던 것 같다. 수집 취향도 잘 맞아서 서로 공감하는 결도 비슷하다.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서로서로 그렇게 부딪힐 게 없이 잘 맞는다. 서로의 장점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이다 보니 협업은 순조로운 편이다.
정은영 건축사 : 직원이나 하물며 ChatGPT도 나의 성향에 맞게 스타일을 세팅하거나 서로 알아가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 소통해야만 프로젝트가 수월한 것처럼, 정대진 건축사는 늘 봐왔고, 이 분이 어떤 스타일이고, 제가 생각하는 것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가, 어떤 부분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지 가늠이 되고 잘 맞으니까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저는 다소 액션이 먼저인 편이라 시행착오도 있고 예민해지곤 한다. 반면 정대진 건축사는 생각을 많이 하고 긍정적인 메시지와 비전을 주는 편이다. 어떻게든 해결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주고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 좋다. 죽을 때까지 건축 선배이자 인생 선배잖아요? 오버러닝 하고 있는 저에게 쉼표를 찍어주고, 시야를 넗힐 순간들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항상 유쾌한 사람이다. 그 부분이 인간적으로 참 좋다.(웃음)
정대진 건축사 : 디자인을 하다보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고정적인 디자인으로 흘러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곤 하느데, 정은영 건축사가 그럴 때 새로운 시각에서 디테일하게 제언해주면 해결점에 어느새 도달해 있다. 일로만 맺어진 팀원이라면 그렇게까지 생각을 깨고 의견 개진하기 쉽지 않은데 부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당한 장점이다. 또 하나의 분신이 있는 것처럼.(웃음)
업무적으로도 제가 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면 정은영 건축사는 기능적이고 실무적인 부분에서 현명한 답을 찾다보니 밸런스가 잘 유지되고 있다.
반면 저는 생각이 많고 좀 굼뜨다 할까? 사실 겁도 많은 것 같다. 정은영 건축사가 대범하게 움직여주면 저로서는 상당히 고맙다랄까? 살아오면서 느꼈던 공감대가 그런 면에서 박자가 맞아서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었다.
Q. 부부가 함께 했던 인상깊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정은영 건축사 : 개소 초기 진행했던 '야호마을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8채의 주택은 컴팩트한 공간에 각각의 건축주가 담고자 한 삶을 풀어냈던 것이 건축사로서 실험과 고민이 함축되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저희도 서툴렀지만 건축주도 서툴렀던, 미숙했지만 풋풋하고 열정 가득했던 프로젝트이다.
주택단지를 설계할 때 건축사가 전체적인 디자인을 조율하면서 하나의 컨셉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축은 각자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에 충분한 인터뷰를 거쳐서 소통하면서 그들의 니즈를 충분히 반영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정대진 건축사 : 땅도 없는 상태에서 저희와 출발을 함께 한 프로젝트이다. 절대 쉬웠던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회상 해 보면 건축적으로 시도만 많고 정리는 다소 되지 않았었지만 애정은 가장 깊다. 건축주는 이곳 저곳 상담을 하면서 동일한 평면과 시공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다소 아쉬워서 한동안 건축사를 찾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땅을 함께 고르는 단계에서부터 건축사를 찾아와준 것 자체도 참 감사했던 사례이다.
저희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 중 하나는 건축주와의 공감이 없이는 좋은 건물이 안 나오더라 것이다. 당연히 기능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야 하겠지만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만 그 기능들도 그들의 삶에서 효험을 발휘한다. 건축주분들이 왜 이렇게 귀찮게 하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소통은 꼭 했던 것 같다.
건축사와 건축주의 사고의 폭이 다르고 사고의 경계가 섞이는 그 부분에서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야호마을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오히려 당시 건축주분들이 저희의 과감한 실험적인 공간에 대해 수용해 준 부분도 감사하다.
각각의 집은 라이프스타일과 요구를 반영해 개성있게 설계하되 유치원도 지어서 공동육아도 하고 경계없는 마당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건축을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조직하는 시도였으며, 마을 사람들 간의 정서적인 교감과 소통을 통해 이야기가 쌓이기를 의도했다.
평면들을 살펴보면 공간적 경험에 집중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각자가 집에서 누리고자 하는 공간적 경험에 대한 정밀한 시선이 한정된 공간 안에 재단하듯 담아져 있다.
소우주 : 개구쟁이 남자 아들 둘을 키우는 의사부부, 넓게 개방된 1층과 부부와 아이들의 사적인 2층으로 구성된 야호마을의 이장님 댁
율이네집 : 건축주가 직접 시공에 참여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은 구름이 되고, 내부 다리는 햇살은 품은 발코니로 연결되는 집
소소헌 : 작은 대지 안에 어머니와 딸 가족이 층별로 독립된 주거공간으로 구성된 집
별헤는 집 : 과학 선생님인 엄마와 아이들이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별을 볼 수 있는 공간 플러스 독특한 취미를 가진 아빠의 다락 공간을 품은 집
라온하우스 : 95세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4대가 함께 사는 집, 한 마당 안에서 소녀 같은 엄마와 모던한 딸의 묘한 동거가 이색적인 집
삼대헌 : 작은 공간을 수직적으로 확장하여, 집중할 수 있고 또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작가의 집
Q. 8채의 주택을 설계한다고 하면 가족수까지 포함해 다수의 클라이언트들과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대처하기 쉽지 았았을텐데요.
정대진 건축사 : 주거공간은 365일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만큼 컬러, 자재, 공간 분할, 조명 등 광범위하게 직접 고르고 관여 해야만 하고 건축사가 함부로 선호하는 것을 강요할 수 없는 반면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기능적인 부분들이나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건축사의 역할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건축사로서 건축주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건축사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시절 설계할 때 교수님들께서 일부러 클라이언트처럼 갈등을 일으켜 공격적으로 크리틱하곤 하지 않았나. 그럴 때 그런 부분을 설득해 이겨내면서 트레이닝 했었었다. 지금도 건축주와의 중간점을 잘 찾아가려고 한다.
정은영 건축사 : 부부 건축사로서 장점이라고 하면 건축주와의 인터뷰에서도 각자 성별을 나눠서 공감해드리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주택에 필요한지 부모로서의 경험이 공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중재할 수 있는 장점들도 있었다. 저희 첫째 아이도 야호마을 건축주들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여서 함께 놀고 하면서 더욱 친밀하게 소통했었다.
정대진 건축사 : 정은영 건축사는 건축주의 라이프 스타일을 면밀히 조사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했다면, 저는 남편분들께 약주도 한 잔 권하면서...(웃음) 그래서 설계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3년 여에 걸쳐 설계한 8채의 각각이 평면이 다 달랐다.
정은영 건축사 : 일생에 있어서 아이들이 자라는데 어떤 공간적 경험을 통해서 정서적인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은 건축사로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부부 건축사의 장점이라면? 일과 일상에서 균형유지는 어떻게 했나?
정은영 건축사 : 여성 건축사로서 일찍 개소한 편이다. 결혼,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이 있기 쉬운 시기에 건축사라는 직업이고, 남편과 업무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보니 장소나 시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부분이 큰 도움이 됐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이 같은 건축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 경력 단절 없이 직장과 가정에서 업무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부 건축사는 메리트가 있다.
정대진 건축사 : 생산성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밥 먹다가도 프로젝트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거나 아이들을 위한 시간에도 업무를 유지하면서도 한 명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서포트 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
Q. 현재 고민과 미래 계획 있다면?
정은영 건축사 : 숙제라면 숙제다. ㈜건축사사무소 미고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용도 같은 것에 국한하기 보다는 어떤 일을 맡게 되더라도 미고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시그니처가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숙제다.
정대진 건축사 : 경제 호황이던 시절의 건축을 앞으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냐라고 생각하면 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통해서 건축의 전환을 모색한다면 가치있지 않을까 요즘 생각하고 있다. 다른 건축사가 풀어낸 기존의 프로그램과 내가 덧입히는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새로운 개성이 드러나도록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건축사로서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프로젝트와 만나지길 바라고 있다.
정은영 건축사 : 저희는 경제가 성장할 때 끝자락에 시작했던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다. 리모델링 이야기도 나왔지만 지속가능한 건축물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정대진 건축사 : 비즈니스적으로 풍요롭게 수주가 가능했던 시장 상황은 앞으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별적인 자기만의 힘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현 시대의 건축시장에 대해 디자인적으로 젊은 건축사들의 젊은 에너지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접근하고, 기성 건축사들의 기술적인 제안으로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양쪽이 유연하게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서로에게 한마디
잘 해왔고, 잘 하고 있고, 잘 할거고!
정대진 건축사
제 자신을 돌아보면 좋아하는 것과 지루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확실하고 건축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하다보면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아내와 참 잘 맞춰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서로에게 한마디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
정은영 건축사
그냥 하루하루가 루틴처럼 지나가고 많은 것들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는데 인터뷰 질문들을 받고서 첫 프로젝트는 뭐였지? 중간 중간 어땠었지? 라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쌓여 신뢰가 두터워지고, 연륜이 쌓여 유연 해져가고 있는 정대진·정은영 건축사. 눈빛을 맞추며 웃음이 빵 터지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건축사로서 부부로서 돈독함이 스며 나온다. 두 사람은 인터뷰 당일 함께 출근하며 근 25년의 시간을 회상하고 추억했다며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잘 맞춰 왔구나’라며 또 한번 서로 웃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