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왜 건축물을 짓는가? 그것을 짓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
좋은 건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건축과 건축물을 향한 근본적 질문
건축주를 중심으로 다시 쓴 건축 이야기
건축이라는 퍼즐의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다루지 않는 그 조각의 이름은 다름 아닌 ‘건축주’다. 그들은 왜 그런 집을 지었는가? 그곳에서 그들은 행복했는가? 당대의 거장들이 설계한 그 집들은 과연 거주자를 위한 공간이었는가?은 과연 그 주택에서 행복했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건축가나 평론가가 아닌 건축주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건축 이야기!
끝없는 하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떠나버린 불운한 건축주가 있는가 하면(사보아 주택), 사생활이 박탈된 공간에서 하릴없이 화장실로 숨어들었던 불행한 건축주도 있다(판스워스 주택). 이와 달리 수십 년간 자신들의 집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행복한 건축주도 있다(피셔 주택).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결정적 원인은 건축주에게 있다. 집을 짓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그리고 집을 짓는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그 공간에서의 삶이 정반대로 달라졌던 것이다. 글쓴이는 말한다. “건축은 건축주의 희망,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공간으로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건축주다.” 건축주의 상상력과 열정이 건축가의 역량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건축은 개인 또는 공동체의 열망을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제2의 건축가’로서 건축의 전 과정에 개입한다. 건축물의 외형적 화려함이나 규모, 비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가 품었던 열망이 이루어졌는지, 그들이 건축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가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되었는지가 핵심이다.
강의 도중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는 에피소드에서 시작한 책은 아득한 옛날 솔즈베리 평원 위에 지어진 스톤헨지 이야기에서 끝난다. 글쓴이는 말한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당시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녔던 공동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그리고 묻는다.
“사람은 왜 건축물을 짓는가? 건축물을 이렇게 짓자고 결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 결정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그 건축물을 짓는 사람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모든 인간이 본디 건축가였다는 것, ‘짓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 거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건축은 미래를 함께 짓는 것이라는 건축가로서의 오랜 소신과 맥을 같이한다. 또한 “건축이란 우리 공동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건축 이전의 것’을 발견하여 구조물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전작(『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장장 650여 쪽에 걸쳐 ‘제2의 건축가’가 갖는 중요성을 얘기한 뒤에, 글쓴이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먼 옛날에 지어진 구조물을 향해 던지는 질문은 오늘 우리 곁에 지어지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스톤헨지를 향한 질문은 건축과 건축물을 향한 근본적 질문이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건축을 배워야 한다. 건축은 모든 이가 함께 짓는 것이다.”
:: 김광현 ::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까지 42년간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의 공동성(共同性, commonness)에 기초한 건축의장과 건축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축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서울특별시 명예시장 등을 거쳐 현재 충청남도 총괄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1997, 2008), 대한건축학회상(2002), 가톨릭미술상 본상(2005), 서울대학교 훌륭한 공대 교수상(2012), 대한민국 생태환경건축대상(2013),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2018), 김정철건축문화상(2020), 대한건축학회 공로상(2024)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주택-땅에 새긴 주택》(1991),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2014), 《건축강의》(전 10권, 2018),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2018),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2021), 《성당, 빛의 성작》(2021)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