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김동훈 건축사는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사용자의 의식을 높이고 사회적인 공헌을 했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설계를 넘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축사로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쌓아가고 있는 김동훈 건축사를 만났다.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로 인해서 그 나라의 국민이나 그 도시의 도시민들에 문화적인 현상을 일으키고 그런 활동을 많이 했는가도 중요하다. 사회적 공헌을 하는 건축사는 그래야 한다. 아주 작은 건물이어도 의미가 있는 행위가 담겨있어야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그러한 문화적 현상은 잔잔한 물결이 조금씩 조금씩 일렁여서 큰 물결이 되듯 영향력이 생긴다.”
지난 2018년 국무총리 표창에 이어 올해 건축의 날 김 건축사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이러한 방향성에 대한 좋은 평가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수원에서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고 수원 청소년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다수의 공공건축물 설계했다. 더불어 대표 프로젝트로 수원시 연화장, 반딧불이 화장실을 빼놓을 수 없다.
“수원시 연화장 공모를 앞두고 도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방향 설정이 되지 않아 낙담하고 있던 차에 어둑어둑한 저녁 물안개가 자욱한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조금 가닥이 잡혔다. 그러고서는 장의사분들을 찾아가 장례 과정의 동선이 어떤지도 묻고, 제를 지낼 때는 북향재배를 해야하고, 장례식 동안 시신을 두기 위해 안치실과 사자의 통로를 만들는 등 세세한 것들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당시 든 생각은 건축사가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이런 기피시설을 심혈을 기울여 공간 구성을 잘해서 문화적으로도 향상된다면 어떨까였다”라고 회상했다.
“과거 화장(火葬)한다하면 몹쓸병에 걸렸거나 요절했거나 뭔가 부정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면 지금은 화장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지않나. 그간 꽤 다수의 장사 시설을 설계하면서 일상에 녹아들어 거부감이 덜한 것을 느끼게 된다. 수원 연화장은 사람의 형상을 본떠 설계했는데,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모두를 위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면서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경제적인 실익보다는 꼭 있어야 할 시설인데 꺼려하는 시설이라면 공간 자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문화적인 현상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건축사로서 가치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시 연화장은 종합장사시설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얻었고, 2000년 대한민국환경문화상, 2002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또한 천안함 희생장병, 세월호 희생자 등의 화장식이 거행된 장소로 뉴스에서 간간이 이름을 듣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또 장사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 건축도 웰 다잉(well-dying)과 같은 현재의 여론을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포화상태에 가까워진 납골당과 같은 물리적인 부분들도 다른 방식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김 건축사는 장사시설에 이어 반딧불이 화장실을 계기로 또 한 번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심재덕 수원 시장 시절 연이 닿아 공모했던 프로젝트인데 생각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건축사는 요만한 작은 일을 했지만 자기가 한 작품으로 인해서 그 지역이 됐든 그 나라가 됐든 지구촌이 됐든 어떤 문화적 현상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앞으로는 그런 것들이 우리의 책무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김 건축사가 장사시설이나 화장실과 같은 기피시설만 설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작(勞作) 하나하나에 이러한 취지를 담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건축은 기능과 미(美)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더불어 비용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작업이니까 마치 자기 것처럼 하는 오만함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클라이언트, 시공자와 같은 관련된 주체들의 에너지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만 궁극에는 좋은 건축이 완성된다고 본다.“
건축은 그루핑(grouping)이 중요함을 수원시 연화장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설계도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했고, 그것을 받아 들여준 건축주가 있었다. 시공사도 대우건설이었는데, 당시 현장소장은 입면에 쓰일 석재가 균일한 면으로 시공되어야 한다며 한 곳의 석산에서 채석된 가평석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화장로(火葬爐)도 알아보기 위해서 일본에 유명 업체를 수회 방문했는데, 학교 후배들이 통역을 맡아주기도 했다. 이처럼 설계는 물론이고 잘 짓기 위해서도 힘써 준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요즘 김 건축사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성장시켜 준 것이기에 선순환이 되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회사 구성원들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자신의 작품 몇 곳을 함께 둘러보고, 설계 당시의 컨셉과 의도에 비해 세월이 지난 후 공간이 현재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응해 변화하였는지를 살피고, 학생들의 솔직한 리뷰를 들어보고 아이디어를 개진해보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에 ‘진검승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러면서 AI 시대를 맞닥뜨린 학생들에게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후배들이 미술, 영화, 음악 등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건축이 주도하기도 하고 서포트하면서 유연하게 여러 포지션을 담당하면서 문화적인 부분도 발굴하고 탐구해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