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훈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푸리)
한종훈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푸리)

지난 대한건축사협회의 목표가 “건축사들의 의무가입” 이었다면, 이번 협회의 목표는 “(민간)설계대가 정상화”가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지키고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건축사들의 기본 업무인 건축설계에서 설계도서 품질의 상향 평준화가 당연히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고, 건축의 첫 단계인 상담부터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야할 것이다.

 

 

(자료제공=대한건축사협회)
(자료제공=대한건축사협회)

혹시 이 포스터 기억하실까요? 몇 해 전 대한건축사협회에서 홍보하던 내용인데 지금은 잘 지키고 있나요?

보통 변호사 사무실에 가면 테이블에 상담시간 30분 내외 기준으로 55,000~110,000원의 상담비와, 법률상담은 유료라는 안내를 하고 있다. 여느 공인노무사 사무실에는 노동법률 상담비용을 안내하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건축사들은 어떠한가요? 우리 건축사사무소도 이제 건축법률 상담 서비스는 유료라는 걸 확실히 알리고, 우리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대가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 및 노무사 상담비용 안내문(자료제공=한종훈)
변호사 및 노무사 상담비용 안내문(자료제공=한종훈)
간단하게 만들어본 건축 상담 안내문(자료제공=한종훈)
간단하게 만들어본 건축 상담 안내문(자료제공=한종훈)

그리고 많은 건축사들이 기획(가)설계를 해주면서도 비용을 못(안)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기획설계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기획 설계 [planning and design, design for programming]

[계획 및 설계] 건축설계란 건축물을 구축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기능과 형태와 구조를 결정하고 물리적 형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총칭한다. 기획설계는 구체적 설계가 들어가기 전 개략적인 내용을 검토하는 가설계를 의미한다.

-가설계 [temporary design, 假設計]

[계획 및 설계] 건물의 규모 등을 파악하기 위해, 기본적인 건축 법규 검토를 기반으로 실시하는 임시 설계를 말한다.

위와 같이 대한건축학회 건축용어사전에는 건축설계, 그 중에 기획설계, 흔히들 말하는 가설계를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가(假)설계에서는 거짓 가(假, 임시라는 의미도 있다)를 사용한다. 가짜 설계라는 말인가? 그래서 무료로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건축 사업을 하면서 주로 가설계라는 단계는 건축 부지를 매입하여 건축을 하고자하거나, 이미 소유한 부지에 건축을 하려는 예비 건축주의 의뢰로 간단한 법규 검토 및 규모검토를 통한 수지분석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는 건축사업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시간 및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 인해 충분한 연구없이(특히 현장 확인도 없이) 기본적인 건축법만은 근거로 작성하게 되며 부정확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또한 보통은 건축주들이 여러 곳의 건축사사무소에 의뢰를 하면서 최고의 용적률을 제시하는(혹은 가장 적은 설계비를 제시하는) 곳과 계약을 하게 된다.

우리 건축사들도 한 건의 설계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서비스(주로 무료)를 하게 된다. 필자에게도 많은 가설계 의뢰가 들어오는데, 다른 사무소에서 진행한 가설계 결과물들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보다는 더 나오게 해주세요” 라는 옵션과 함께. 순간 많은 고민을 한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까? 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

건축사법 제19조(업무내용) 에는
① 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② 건축사는 제1항의 업무 외에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1~8의 사항.

그러나 ‘가설계’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건축물의 설계도서 작성기준(2016.12.30.) 에는 우리가 흔히 '가설계'라고 하는 것과 가장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 용어가 나오는데,

2.3."기획업무"라 함은 건축물의 규모검토, 현장조사, 설계지침 등 건축설계 발주에 필요하여 건축주가 사전에 요구하는 설계업무를 말한다.

2.5."계획설계"라 함은 건축사가 건축주로부터 제공된 자료와 기획업무 내용을 참작하여 건축물의 규모, 예산, 기능, 질, 미관 및 경관적 측면에서 설계목표를 정하고 그에 대한 가능한 계획을 제시하는 단계로서, 디자인 개념의 설정 및 연관분야(구조, 기계, 전기, 토목, 조경 등을 말한다. 이하 같다)의 기본시스템이 검토된 계획안을 건축주에게 제안하여 승인을 받는 단계이다.

우리에게 보통은 2.3 기획업무(규모검토)와 2.5 계획설계(설계목표 설정과 계획제시)의 일부분 정도를 합쳐서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획설계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건축물의 설계표준계약서 [시행 2019. 12. 31.]에 의하면 기획업무는 ①규모검토, ②현장조사, ③설계지침서, 설계공정표, 그 밖의 조사비교 업무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②현장조사이고 나머지 일들은 추가 업무인 것이다.

여기서 흔히 가설계라고 불리는 기획설계를 다시 정리하자면 의뢰받는 대지에 현장 조사를 통해 어느 규모 정도의 건축물이 가능할지, 더 나아가 가능한 계획을 보여줌으로써 건축주에게 제안하는 기획업무 단계라고 하겠다. 위의 표에서 주로 ①규모검토, ②현장조사까지 업무가 보통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건축사들은 가(假)설계라는 말 대신 기획설계 라는 말을 쓰면 좋겠다.

우리 건축사들은 설계용역을 수주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 한다. 아무런 투자 없이 일을 수주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건 사업의 기본 이치일 것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받는 것(기획설계 안)이 있어야 주는 것(설계용역 계약)이 있을 거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무료로 기획설계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료로 기획설계를 서비스 해줄 것인가? 우리들의 인식 속에는 여러 주택 시공사가 광고하듯이 건축설계 무료, 집을 지어주면서 공짜로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설계비는 전체 사업비도 아니고 공사비의 5%(이정도 받아보고 싶다)도 차지하지 않지만 건축 사업에 있어 그 영향력은 감히 ‘51% 이상(나머지 49%는 금융과 시공)’ 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개인 생각)이다. 그 시작이 기획설계인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이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라는 말과 같다.

그럼 어디까지 무료서비스로 해줄 것인가? 사무소마다의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각 사무소마다의 기준이 있을 테니까. ‘(무료) 기획설계는 본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는 전제로 진행 한다면 많은 대안과 디자인을 제시 하겠지만, 보통은 그냥 다른 사무소와의 대안을 위한 부분이 많으므로, 그 핵심과 노하우를 제외하고 보여주게 된다. 그 시간과 비용을 최소한으로 투입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축주(시행자)들은 이 기획설계안을 가지고 설계자를 선택한다. 좋은 설계는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건축주와 수많은 협의와 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설계용역 계약에 이르기도 힘들다. 여기서 용역비로 또 한 번의 고비가 오는데, 가장 적은 용역비를 제시한 사무소가 계약할 확률이 높다.

좋은 기획설계 안을 제안하더라도 설계비가 비싸므로, 설계비가 싼 다른 건축사사무소에 여러 기획안을 들고 가는 등, 디자인을 훔쳐가는 이런 행태가 많기 때문에 유명한 건축사들은 기획설계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다 시공사가 공사를 맡겨만 주면 설계비를 공짜로 해주겠다며 본인들 유리하도록 말 잘 듣는 건축사로 변경을 하기도 한다.

몇 해 전의 이야기인데 어느 토지주의 아들이라는 분이 사무실을 찾아와서 기획설계를 부탁해서 일주일(당시에는 계약서 작성이 없었다)이 지난 후에 만나게 되었다. 1~2층 근린생활시설에 3~5층(주인세대 다락층) 다가구주택으로 검토를 했는데, 다른 사무소의 기획안보다 연면적이 훨씬 적다고 의아해 한다. 그래서 다른 사무소의 안을 보게 되었다. 1개층에 주차 5대를 하기 위해 (총15대) 지하 3층을 파고( 바로 옆 건물과 붙어 있는 상황) 일조사선으로 제대로 된 방이 나오지도 않는데도 8층까지 오피스텔과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으로 계획을 해왔다. 그래서 은행 대출까지 생각해서 사업비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그 비용으로 건축을 할 건데, 어느 정도의 신축에 대한 대출을 받겠지만 전제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상 공사비를 추정해서 이 정도의 안이면 공사기간도 길어지고, 공사비도 턱없이 모자란다고 말씀드렸다. 우리 기획안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요구사항은 임대용 사업인데,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이 목적이고 다주택자가 될 수도 있어서 앞으로 생길 세금문제도 세무사랑 검토 받으시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검토를 해보겠다고 갔는데 연락은 없었다. 또 한 번의 무료 기획설계를 한 것인데 얼마 전 지나친 그 현장은 아직 신축은 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획설계 업무를 진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2013년도부터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건축기획업무 계약서 작성을 생활화 하자며 홍보 및 계약서 샘플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비용을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필자의 경우 몇 해 전부터 독자적으로 ‘기획설계업무 동행(갑, 을이 아닌)계약서’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많은 비용은 아니지만 50~100만원의 비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검토기간은 업무일 기준 10일(2주)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은 이를 거부하고 상담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담시간이 마무리되면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 기획설계업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의 건축주들은 그 결과물에 만족하고 3/4 이상 본 계약으로 이어졌다(요즘은 그마저도 없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기획설계가 아닌 가설계를 하실 건가요?

정리하자면 우리 건축사들 중에 누군가는 계속해서 무료로 건축 상담 서비스 해주고, 기획설계도 할 것인데, 우리들 스스로가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까지 무료로 일을 할 것인가?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주에게서 나온다. 그나마 공공의 경우는 많이 나아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민간 시장에서는 요원한 일인 것이다. 전에 의약 분업할 때 슬로건을 보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고 홍보했다. 그럼 우리 건축의 경우는 이렇게 할 수 있겠다.

“건축은 건축사에게” 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싶다. 건축의 시작과 끝은 우리 건축사이어야 한다.

필자는 상담 끝에 “좋은 건축을 원하면 좋은 건축주가 되어서 좋은 건축사를 만나라”고 말해준다. 이를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좋은 건축사"로 준비되어 있어야겠다. 좋은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결국 우리 건축사가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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