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에 한번 나오는 대건축사부 (師父. 師傅. 士夫)

LE CORBUSIER 르 코르뷔지에 서울전시를 보고
본명은 Charles-E'douard Jeanneret.1887.10.6. 스위스 라쇼드퐁~1965. 프랑스 카마르탱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스위스 .건축가. 도시계획가 근대건축운동의 기능주위와 대담하고 조소적인 표현주의를 결합한설계가 특징이다. 이른바 국제주의건축의 제1세대로서 수많은 저서를 쓴 가장유능한주창자였다. 그는 자신의 건축에서 그 세대 기능 주의자들의 열망과 표현주이적인 강렬한 감각을 결합시켰고, 금욕주의와 조소적 형태를 추구하는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기법으로서 거친 마감 콘크리트 사용을 연구한 최초의 건축가였다. 브리태니커 6-507p
예술의 전당 디자인관에 들어서면 전시장입구 오른쪽에
겸손한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
겸손은 낮춤이 아니라 존중이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에 대한 존중
이어서 그의 연보가 나온다.
연보후 루부르 궁에서 르 코르뷔지에 국장으로 치뤄지는 영상 과 횃불 그가 생전에 선택한 장송곡이 흐른다.
건축가의 국장 처음 보는 영상이다.
350점 전시중 처음 나오는 17점의 유네스코등록 건축사진 이다.
학창시절 꼼꼼한 그림 스케치 등에 이어 그리스 동방여행스케치 도자기 컬렉션이 나오고 이어순수주의풍의 그림이 나온다. 전시연표를 참고하여 들어가면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산으로 둘러싸인 쥐라지방 한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 다닌 사람이다. 이 마을은 18세기부터 정밀기계의 세계적 중심지였다.
스위스 사람들은 자수 바느질등 공예 잘하는 민족이었는데 여기에 시계를 접목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실천하여 시계공업이 성공한 나라이다. 치밀하고 꼼꼼한 민족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세계적 건축가가 배출되는 기초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1887년 스위스 시계도시 라쇼드퐁에서 둘째아들로 내어나 시계공 아버지의 정밀함과 피아노선생어머니의 감성을 이어받았지만 태어난 고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또한 차남은 진취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라쇼드퐁 예술학교 입학 후 라 플라트니에 선생님을 통해 화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안도다다오가 정밀함을 다루는 공고기계과 졸업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듯이, 1911년 그리스 여행 중 아테네 파르테논을 보고 스케치 하여 깊은 감동을 받아 건축가 로서의 평생의 교훈과 영감을 얻게 되는 여행이 된다. 발칸반도 그리스 터기 (동서양의 문명이 마주치는) 동방스케치여행은 건축의 원조의 이미지를 배우게 된다. 여행은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그에게 교육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1911년 전원 같은 스위스를 떠나 선망의 유럽의 예술중심도시 파리에 가서 건축사무실을 차린다.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1918년 오장팡과 함께 프리즘이 새로운 예술가의 언어이기를 표방한 큐비즘이후를 출간하고 두 번째 경력을 시작한다.
파리에 온지 10년 만에 1920년 오장팡과 에스프리노보 창간하는데 그 당시 미술, 문화, 과학,
‘책과 접시더미 정물화’ (1920)은 토기와 기타가 평면과 측면이 같이 보이는데 그의 추상적인 사유가 돋보이는데 퓨리즘(순수주의)을 지향했던 그의 회화기법은 그의 시각으로는 조금은 덜 인간적이었던 큐비즘과 대비되며 조선시대 민화와 비교해 볼만하다.

1928년 빌라사보아를 건축하면서 현대건축의 5원칙을 완벽하게 적용한다. 이 건축은 2차세계전쟁 중 건초창고로 쓰이다, 철거위기에 놓이나 건축문화 애호가의 힘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듯이 유네스코등록문화재가 된다. 전쟁 중 BC정부 하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해방되어 제1기1922년~1940년) 제2기 (1944~1965)시대에 진입한다.
전쟁 종료후 1945년 최초의 공동주택 마르세이유 유니테 다비타시옹 아파트로 인기를 가지게 된다. 피로티의 공공개념, 수평창, 중2층식아파트, 앞뒤로 긴 평면, 어린이의 정원인 옥상정원이 특징이다. 단점으로 기능과 경제성을 강하게 밀고나가다 보니 이웃집 사랑의 소음이 들린다는 점이다.
1950년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유럽성당에 깔려있는 성당디자인의 기본언어를 사용하여 롱샹성당 Chapel of Ronchamp 짓기에 헌신한다. 1952년 챤디가르 의회 건물을 준공하다. (52년10월부터 56년3월까지 김중업근무) 1957년 마르세이유, 유니테 다비타시옹 준공. 멋있고 우아한 여자 아내 이본느 갈리소가 숨을 거둔다, 1961년 필라델피아 미국건축가 협회에서 금메달수여된다.
1962년 하바드대학교 시각예술센터를 설계하고 파리현대미술관에서 르코르뷔지에 회고전이 열리고, 1964년 레지옹 도뇌를 대기사 훈장이 수여된다.
건축은 당대 최고지만 피카소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독자성이 약해 미국전시시 그림 평가가 약하다는 글이 있다.
1965년 8.27 지중해에서 수영중 심장마비로 사망. 필자는 사망소식 라디오방송을 들었으며 동년 9월 홍익대학교 계단식 강의실에서 김중업교수의 르코르뷔지에를 추모하는 특강이 있어 들어가 들었다.
부모의 집. 유니테 다비타시옹 아파트 유니트, 복도 설계실 등으로 보아 대범한 장방향 평면을 사용하고 있다. ‘집은 살기위한 기계’ 대량생산적 발상 인간을 위한 것과 상충되는 느낌이다. “구부러진 거리는 당나귀가 다니는 길이지만 곧게 뻗은 거리는 인간을 위한 도로이다” (구부러진 도로는 자연적인 사람의 길이며 곧은 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길 아닌가?)
피카소. 친구 레제(매우 절제된 구성에 대담한 색채를 배열하여 위풍당당한 기계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 이른바 '기계미술' 양식을 개발했다. 캉의 건축사무소에서 2년 동안 도제로 일하다가, 1900년 파리로 가서 처음에는 건축사무소의 도제공으로 일했다.) 의 작품을 좋아하다, 독자성이 떨어지는 듯한 누를 범 하는 것 같다.
2015년 파리 퐁피두센타 르코르뷔지에 전시물을 사진으로 볼 때 책들이 보이지 않고, 의자는 4개중 1개만 전시되고, 퐁피두전시에 나온 롱샹교회는 미색석고모형이 아름답다. 아파트모형이 다르다. 350점보다 질적인 전시 공간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제자 김중업을 마지못해 끼워주는 느낌을 받았고, 김중업의 프로필도 유럽에서 화가김환기의 추천으로 귀국시 H대학교수로 부임하는데 이 중요사실이 빠져있다. 진실이 은폐된 내용은 건축윤리를 파괴하는 일이다.
그러나 4평집으로 생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아름다음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500년에 한번 나오는 대건축사부의 큰 전시다. 전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전시기간 16.12.06(화)~ 17.03.26(일) 장소; 예술의전당 디자인관
2017.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