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가봤니? 경기도! - ㉔ 섬 아닌 섬, 오이도! 조개구이는 오이도!
-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 오이도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질문에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 오이도까지 가봤다"로 답한다.
지하철 많은 인파 속에 시선이 머무르는 노선표, 노선표에서 4호선의 종착역 이름은 어린 나에게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 섬 이름이 오이? 고개 이름이 당?' 4호선 북동측 종착역은 당고개-불안산역으로 변경되고 남양주 진접까지 확장되었지만, 오이도는 계속해서 오이도이다.
오이도는 어떤 섬일까? 오이도에 이미지가 생겼다. 오이도를 가면 빨간 등대에서 사진을 찍고, 조개구이를 먹는 곳이다. 건축을 배우면서 나름대로의 지역의 이미지를 연상해 보면 서해바다색, 방파제, 빨간등대, 포장마차, 조개구이, 조개를 구워준 아줌마였다. 일하면서는 동료들과 조개전문식당을 가서 조개를 보면 오이도의 이미지가 연상이 되었다. 그런데 나만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조개구이=오이도"라는 암묵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오이도의 이미지이고, 도시의 브랜딩이기도 하다.
Bill Baker는 소도시 및 지역의 장소 브랜딩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저자이다. 그는 음식은 장소의 DNA에서 기본적인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도시마다 특색이 있지만 그 장소의 생활방식과 본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고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 내 특정 구역의 독창성으로 반영되기도 한다. 세계음식관광협회를 창립한 Eric Wolf은 미식과 장소의 정체성의 융합을 강조하며, 음식관광은 장소의 맛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행위이다. 이를 통해 그 장소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음식과 장소, 장소에 뿌리 내린 문화, 지역의 독창성에 대해 '조개구이는 오이도, 시흥시 오이도, 오이도의 음식과 도시화'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오이도역은 2000년 7월 28일 개통이 되었고, 오이도는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학생 층으로 입소문들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닷가까지 갈 수 있는 접근성과 오이도만의 조개구이 분위기가 결합하면서 젊은층에게 수도권 로컬 조개구이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대한민국의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쏠림 현상과 맛집을 SNS로 기록-홍보하는 사람들이 젊은층이라는 특징이 맞물리면서 '조개구이는 오이도'라는 이미지로 지역의 브랜딩이 되었다.
우선 오이도는 섬의 지명인데 섬이 아니다. 섬이 아니게 된 이유는 서해안 일대의 간척사업이 원인이다. 간척사업을 통해서 도시의 지형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이도 일대는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화되어 갔다. 어촌마을의 경관이 해안도시의 경관으로 바뀌었다. 오이도와 송도의 거리도 짧은 쪽은 1km 정도의 수준이데, 이 폭이면 한강 폭이다. 저녁에 걸으면 한강고수부지 느낌도 난다. 이 일대를 더 이상 어촌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이도는 조개구이 상권으로 유명하지만 가기 전에 오이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오이도 선사유적공원]과 [시흥오이도박물관]이 있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에서는 다양한 선사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선사체험마을과 움집 체험이 가능한 야영마을, 발굴터, 사냥터 등이 조성되었고, 패총전시관, 오이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2002년 국가사적 제441호로 지정된 후에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위해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하고 2018년 4월 10일에 개장하였다. 공원면적은 335,859㎡이며 구릉지라 가볍게 나들이 하기에 좋은 코스이다.
오이도는 패총(貝塚, shell mound)이 유명하다. 조개껍데기 무덤이다. 과거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조개, 굴, 고동 같은 패류를 먹고 남긴 껍데기를 한곳에 버렸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쌓여서 언덕처럼 된 것이다. 단순히 음식 쓰레기장이 아니라 그 안에는 동물 뼈, 도구, 토기 조각, 때로는 사람 뼈까지도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패총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 주거환경, 매장풍습, 사회구조를 알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라고 한다.
패총전시관에서는 패총에 대한 역사와 오이도의 육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에는 바닷가에서 조개 등을 주워먹는 것이 육지에서 채집 생활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식량을 구하기 수월한 곳에 마을이 형성이 되었고, 1920년대에는 염전을 개발하기 위해 매립이 시작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1990년대 시화지구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육지화(도시화)가 되었다고 한다.
오이도박물관은 2019년 7월에 개관하였으며, 오이도선사공원과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오이도 선사공원 유적지와 오이도박물관은 브릿지를 통해 연결되며, 브릿지에서 해안경관을 볼 수 있다. 시흥오이도박물관은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며, 상설전시관에서는 오이도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오이도박물관에서는 채집도구와 그릇이 전시되어 있다. 바다에서 굴이나 조개를 채집하고 모닥불에 조개를 구어 먹는 내용이다.
"시흥은 연안해역의 간척사업에 의해 지금은 대부분 육지화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시흥 지역 곳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바닷길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시흥의 땅속 깊이 잠든 문화재는 1988년 오이도유적(사적 제441호)과 1997년 방상동 청자백자 요지(사적 제413호)가 조사되면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 시흥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장현동, 목감동, 은행동, 계수동 일원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의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다. 장현 유적에서는 2,500여점의 구석기 유물이 확인되었고, 능곡동과 하중동 유적에는 신석기시대 취락유적이 발견되었다. 은행동, 계수동 유적에서는 삼국시대 무덤과 취락이 확인되어 시흥의 백제권 문화상을 보여주며, 방산동 가마터는 고려 초기의 청자, 백자의 생산과 유통의 흐름을 살표볼 수 잇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상설전시관 내
더 이상 섬이 아닌 오이도의 역사와 지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지역문화로서 조개구이는 오이도 지역의 정체성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모닥불 켜놓고 조개구이를 먹던 인류는 이제는 SNS로 맛집을 검색하고 자동차를 이용 타고 와서 조개구이 상권에서 조개구이를 먹는다.
도로를 중심으로 안쪽은 상업지역, 바다 쪽은 공공시설물로 배치 되어 있다. 배다리선착장을 시작으로 방파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거리가 1.6km정도 되는데 그 사이마다 볼거리들이 있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 오이도 빨간등대, 오이도항 선착장, 오아시스 등의 시설이다. 빨간등대는 오이도의 상징이 되었다.
오이도는 계획도시로 방조제 위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도로에서 노상주차장이 계획되어 있어 차를 타고 바다로 접근하기도 좋고 식당으로 접근하기도 좋다. 방조제 위에 걸으면 자동차는 밑으로 보여서 시야가 개방적이고 보차분리도 명확한 편이다. 또 식당들을 가도 2층에 가면 탁 트인 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오이도 조개구이 집들의 장점은 어느 식당이든 전망이 좋다는 것과 주차가 편하고 바다산책이 매우 용이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준 영양이 가득한 음식, 음식을 통한 문화의 형성, 그리고 계획된 도시공간과 개별건축물들의 개성의 조합은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편리한 접근성과 오랜시간 쌓인 지역의 고유한 맛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오이도를 둘러싼 도시 지역의 지형이 변해도, 이 지역에 DNA 음식인 오이도 조개구이는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