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 박정연 건축사
Interview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 박정연 건축사
바이올린, 색소폰, 트럼펫, 스케치... 건축.
인터뷰 중간중간 새로운 챕터를 넘기듯 그동안 체득한 영역들에 대해 듣다 보니 박정연 건축사는 관심이 생긴 영역을 탐색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성실하게 익히는 과정 또한 흠뻑 즐기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묵묵히 자신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 박정연 건축사를 만났다.
다채로운 관심사를 진지하고 차분하게 익혀가는 순간들, 그것이 박정연 건축사의 면모가 돼
박정연 건축사가 건축이라는 전공을 택하게 된 과정을 듣다 보니 관심의 폭도 넓고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것들을 해왔지만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고 몰입하는 스타일이랄까.
어린 시절 여행 중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에 매료되어 부모님을 졸라 4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Kenny G의 색소폰 연주가 유행하던 시절 또 한번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된다. 그렇게 이어진 것이 관악기로 군악대를 지원, 최고점을 받고 입대해 복무 중에는 트럼펫과 인연을 맺는다. 또 교회와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도 이어갔다. 경기도건축사회 회원들은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경기도 건축사 체육대회에서 박 건축사의 트럼펫 연주에 묵념도 하고 국민의례도 했었다.
이처럼 중학교 때 악기도 제법 잘 다루고, 미술대회에도 입상하는 편이고, 과학도 좋아해서 진로를 결정할 때 각 과목 선생님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분야로 진로를 정하라고 설득할 정도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건축이 과학과 기술에 예술적인 부분이 융합되어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건축 분야에 접어들었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쁨이 엄청났던 것 같다. 실력이 전공자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과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다 보면 오디오로 들을 때보다 감동적인 순간이 있다. 그림도 완성되었을 때도 비슷한 감동이 있는데, 그것이 2D라면 건축이 완성되었을 때의 감동은 4D 정도의 강도라 할 수 있다. 힘들지만 한번 경험하고 나면 지금까지의 힘든 것들이 잊혀질 정도이다. 도면만 몇 달간 보다가 거푸집이 제거되고 골조가 드러났을 때의 임팩트는 상당히 강렬했다. 머리 속에 있었는 것이 구현될 때의 희열 때문에 중독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정연 건축사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에는 건축 답사에서부터 소소한 건축 설계 에피소드, 스케치 등 자신의 폭넓은 관심사를 촘촘하게 담아낸 밀도높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선배인데, 대학생 때 잡지를 보고 하루에 1장 스케치를 해서 설명하라고 했다. 그분의 취지는 스케치한 건축물의 건축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텐데, 저는 예쁘게 명암넣고 스케치하는 것 자체에 심취했었다. 작업실에 공간 誌를 비롯한 1970~80년대 잡지부터 국내 잡지들이 가득했는데, 하루에 한두 권씩 보고 간단하게 그리다 보니 건축물들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현대건축 흐름을 이해하게 됐다. 비례나 요소들이 탄탄하게 잘 갖춰져 있는 유럽 성당이나 우리 한옥들을 비롯해 좋은 작품들을 열심히 그려왔다.”
“스케치는 건축사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모형이나 3D로 표현을 잘 하는 분들도 있지만 스케치는 손으로 빨리 그려서 바로 보여 줄 수 있으니 직관적이기에 가장 널리 쓰이는 제2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박 건축사는 최근 5명의 건축사와 함께 각기 다른 스타일의 드로잉을 선보인 ‘Early Architect’ 展에도 참여했다. 「건축가의 수첩」이라는 단행본에 참여하기도 하고, 「건축가의 스케치북」 번역 등 출판 업무로 이어지는 계기가 있었다.
악기든 스케치든 건축이든 관심을 둔 영역은 늘 깊이 들어가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체득하는 사람이다. 관심사는 다채롭지만 진지하고 차분하게 익혀가는 사적인 순간들을 쌓아왔기에 지금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 그리고 연향재(椽香齋)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는 철도역, 공공시설, 교회, 근린생활시설 등 10여 년 동안은 한계를 두지 않고 맡겨진 것들을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폭넓게 포트폴리오를 채워가며 성장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1시간 일하면 그 일한 대가로 자신이 먹을 햄버거는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사로 10년 정도 일했다면 자기 건물 하나 정도는 지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마음이 생겼다. 다둥이 아빠로서 아파트에서 아이들마다 각자의 공간을 주고 또 나의 공간까지 누리는 것은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래서 꿈을 가지게 되었고, 어딘가에 집을 지어서 살면 좋겠다. 막내에게도 방을 만들어 주고, 내 방도 갖고 싶었다. 그래서 결단과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박정연 건축사 가족들의 보금자리 ‘연향재(椽香齋)’가 탄생했다. 아파트가 들어설 일 없는 공원이 있고, 초중고를 품은 등하교에 유리한 위치에, 경사지의 유리한 면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등 장점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해 풀어갔다. 더불어 금전적인 부분은 경기도건축사신협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고.
건폐율 20%라는 제한된 조건 내에서 아이들 방을 남쪽에 최대한 공원이 잘 보이는 남향으로 배치하고, 화장실, 계단 등을 풀어내야 했다. 연향재가 위치한 곳은 등하교 시간에 초중고생들이 500~1,000여 명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벽체를 돌출시켜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리듬감 있게 배치해 외관에 개성을 만들어 냈다.
”내가 결정할 수 있어 좋았다. 결정의 아쉬움은 늘상 비용이다.(웃음) 연향재를 짓기 전에는 건축주에게 항상 이런 저런 것들을 선택하다 보면 10% 정도의 비용 증가를 고민하게 될 테니 여유를 가지셔라, 기간도 늘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던 것을 되새기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설계비는 내가 얼마만큼 고민하고 일하겠다는 ‘선언’
”설계비 액수를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며 1/3, 1/4 정도의 다른 사무소의 제안 가격을 말씀하시거나, 서울, 경기도 다른 지역을 거쳐 저희에게 오셨다며 서울보다 현저히 싸서 믿음이 안 간다는 경우도 있었다. 설계비는 내가 얼마만큼 고민하고 일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계비에 대한 건축주들의 일반적인 기준은 천차만별이죠. 단순히 가격 비교를 하거나, 한 달 안에 끝내달라는 요구도 있다. 결과물의 기준이 다름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
“요즘 현실은 어려울수록 더 저가경쟁하고 더 과열경쟁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다 낮추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어려울 때일수록 건축사들이 마음을 모아 공사에 필요한 도서를 최대한 제대로 제공하고 대가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 같이 좀 더 잘 하는 쪽, 더 좋은 쪽, 더 좋은 건축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아울러 건축주인 일반 시민들에게 교양으로서 건축이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은 의식주 중 ‘주(住)’를 다루는 중요한 분야이다. 미술, 음악은 과목으로 만들어서 열심히 가르치는데 건축은 미술이나 기술 수업에 한 파트로만 들어가 있다. 엄청난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건축의 가치를 일상 속 이야기로 쉽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박정연 건축사는 건축사뉴스 기자, 경기도건축사회 편집위원을 거쳐 대한건축사협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작품 선정, 인터뷰, 유튜브 방송 등 대한건축사협회의 여러 미디어에 참여하고 있다.
“제가 우리나라 건축계나 사회에 바라고 있는 점들이 분명히 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제 SNS에만 노출할 것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서 많은 건축사들의 목소리를 같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편집위원장을 수락했다. 건축사가 만드는 매체이다보니 심각한 문제나 정말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드러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수위나 표현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분명한 사실과 데이터를 근거로 보도하더라도 선의의 피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있다. 협회의 생각이나 방향을 합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은 분들과 협력해서 참여하고 있다.”
그는 AI 시대에도 건축사는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AI를 익혀서 활용할 수 있지만, 건축사의 창의력과 경험, 그리고 깊이 있는 사고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건축사가 더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