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나래건축사사무소 민병섭 건축사

2025-06-23     이일 기자
민병섭 건축사

Interview 


나래건축사사무소 민병섭 건축사


일녕원(日寧院) 입구에 놓여 있는 ‘따스함과 평안이 깃든 곳’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은 건축주가 이 공간에 담아내고자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녕원에서 평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최근 진행 중인 일녕원(日寧院) 현장에서 나래건축사사무소 민병섭 건축사를 만났다. 한옥에 진심으로 열정적인 건축주를 만나 한옥이라는 장르의 구현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탐구하고 실현해 내는 중이다. 일녕원 곳곳은 전통적인 한옥의 원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미감이 이질적이지 않게 스며들 수 있게 정교하게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이다. 

건축주가 한옥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체득한 경험이 민 건축사를 통해서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일녕원. 그곳에는 어디 하나 의미없이 놓여진 공간이 없다. 숙박, 식음료 제공이 가능한 공간은 물론 황토 찜질방, 다락, 다수의 인원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치를 수 있는 이벤트홀 등 제약을 두지 않고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지형의 레벨을 이용해 지하공간에서부터 전망이 좋은 2층 공간까지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자연스러운 시퀀스의 흐름과 완급에 따른 변주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공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마다 조경으로 테마를 달리하여 배치해 닫혀서 독립된 듯하면서도 이어져 있고, 작은 쉼표 같은 공간들이 혼재되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인 과감한 도전, 두 가지 사이에서 감각적인 완급 조절이 이 곳의 한 끗 차이이다. 건축주는 고재(古材) 수급에서부터 조경까지 공간 구성과 곳곳의 디테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직접 시공하면서 공간마다 어떻게 하면 표정을 달리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또한 일녕원은 공간을 채울 가구와 소품, 조명 등 그동안 수집한 것들을 담아낼 건축주의 취향 집합소라고 할 수 있다.

일녕원은 2013년부터 설계를 시작해 아직은 미완이며, 진행형인 일녕원은 현재의 대지 뒤편으로 또 새로운 공간을 공사 중이다.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한옥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의 의지에 힘입어 일녕원은 시간적으로 지연되고,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완벽을 기하고자 한다고.

한옥 감수성은 우리의 DNA에 그냥 있어

“우리에게는 한옥의 매력을 알아보는 정서가 스며들어 있다.”

민병섭 건축사는 우리에게는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과학적인 세련된 한옥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DNA가 있기에 마주하는 순간부터 어색함이나 반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뼛속부터 한옥에 대한 감수성이 체득되어 있고, 한옥의 균형잡힌 미감을 알아보는 안목이 탑재해 있는 셈이다.

민 건축사는 자신의 집에 황토방 하나 있는 규모로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구들을 사러 갔다가 만난 인연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한옥 설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안산에 있는 농어촌연구소에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농촌 사회의 인구를 유입을 목적으로 귀농자들을 위한 주택을 유형별로 제시하는 전원마을 모델하우스 단지를 2006년 준비할 당시 민 건축사는 3동의 한옥을 단지 내에 설계하게 된다.

“한옥 인력 양성 과정을 이수했더라도 실제로 한옥 설계로 활동하는 건축사들이 드문 편이다. 실제로 한옥을 설계할 확률이 낮고, 오히려 한옥은 건축사들도 특별한 건축물로 간주한다. 주택이든 근린생활시설이든 한옥이 현재에도 계속 지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생명력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전통건축을 원형으로 삼아서 라이프스타일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옛날처럼 주방이 레벨 차이가 있고, 화장실이 별동으로 있다면 현대인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한옥의 장점을 살려서 실용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 채의 한옥을 완성하는 과정, 현실에서 실무적인 한계 많아

민병섭 건축사

“모든 도면은 선과 선이 이어져서 그 형태를 만드는데, 한옥 도면은 배 이상의 선이 필요하고, 기와 같은 부분도 있어서 곡선 분량도 상당하다. 구조계산에 있어서도 한옥 부재의 특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 내화 구조를 위한 마감재 규제에 대해 자유롭지 않은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물론 있다. 그래서 제도적인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 한옥의 특수성을 고려한 법이 만들어지고 규정이 재정비되어야만 한다. 일반 건축물에 비해 한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공무원들도 우왕좌왕 하기도 한다. 손쉽게 한옥을 지을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도 발전이 필요하다.”

때로는 한옥을 한 채 지을 때 감리자의 한옥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현실에서 실무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민 건축사는 먼저 한옥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조계산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가이드 라인이 마련되고, 단열이나 내화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건축사가 한옥을 설계 못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인력양성이 중요하다. 현장에서도 하고, 오히려 학계도 와서 체계 잡는 일도 해야 한다. 대학에서 건축사(建築史)만을 훑고 가볍게 다룰 것이 아니라 한옥 설계가 필수 과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처럼 민 건축사는 20여 년 한옥 설계를 하면서 우리의 한옥이 기술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조형적으로도 발전된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서도 고집스럽게 이어 나가려는 의지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옥은 균형이 잘 잡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 즉 균제미(均齊美)를 간직한 고유한 개성과 가치가 있다. 대중들이 가까이서 자주 경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과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우리의 유전자가 알아보는 한옥의 본질은 변함없을 것이다. 몇 년 후 일녕원이 완성될 즈음 또 많은 사람들이 한옥만의 수수하고 수더분하지만 정교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