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중심의 학교공간

2025-06-18     최수영 건축사(수영아뜰리에 건축사사무소)
최수영 건축사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세대의 등장 등 불확실한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취득하여 누적 졸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러한 사회와 교육 제도의 변화는 기존의 학교 공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요구를 만들어냈고, 이에 따라 많은 학교들이 고교학점제 운영에 적합한 새로운 공간 구성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고교학점제에 적합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교육과정과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용자 참여 설계’가 도입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의 건축설계에서도 사용자를 고려해왔지만, 이번에는 교직원과 학생이 직접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보다 적극적인 참여형 설계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는 교육 공간이 단순한 시설이 아닌, 교육과 함께 진화하는 유기적 공간임을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사용자 참여 설계는 학교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고교학점제는 학교마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요구되는 공간 또한 학교별로 다양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참여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교육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앞으로의 학교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참여 설계에서 건축사의 역할은 단순히 공간의 형태나 쓰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공간을 제안하고 구성원들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 있습니다.

학교 구성원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고교학점제라는 공통의 교육 목표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거치며 의견이 점차 정리되고, 결국에는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마음이 모이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학교는 진정으로 필요한 공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교육을 담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은 사용자 참여 설계 과정에서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간을 제안하며, 학교 곳곳을 둘러보는 과정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학교라는 시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구성원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공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도 잘 부합하는 교육적 경험이 됩니다.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해 완성된 학교 공간을 둘러보면,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학교 구성원들의 달라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훨씬 깊습니다. 교직원과 학생들은 약 1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고, 교육과 생활의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공간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해 왔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은 단지 기능적인 면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의 생각과 가치, 교육에 대한 기대가 담긴 장소입니다.

기존의 학교 공간을 변화시키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과 수많은 협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바로 그 과정을 통해 학교 구성원들은 진정한 학교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갑니다.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만들어가는 경험 자체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기성품 종이컵과 직접 만든 도자기 컵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종이컵과 달리 도자기 컵은 그 안에 담긴 노력과 생각으로 인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도자기 컵을 볼 때마다 그 컵을 만들던 순간의 마음과 의미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듯, 학교 구성원들도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해 만든 공간을 매일 마주하며, 그 공간에 담긴 교육적 가치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사용자 참여 설계 과정은 학생들이 직접 건축에 참여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조율하는 경험을 통해 건축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있게 넓혀가는 기회가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고,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해 나가는 협력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적인 소통과 공동체의식을 배우는 교육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기존에는 학교 공간이 먼저 조성되고, 사용자는 그에 맞춰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와 달리 사용자 참여설계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이 작은 교실단위부터 스스로 공간을 주체적으로 제안하며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이면서, 학교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며 학교 구성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