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건축사헌장의 재조명과 미래 건축사의 역할
– 대한건축사협회 60주년을 맞이하며
2025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듭했고, 건축사들은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삶을 담는 공간을 만들며 도시와 인간 사이의 조화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성과를 돌아보며, 앞으로 건축사가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1981년 제정된 ‘건축사헌장’은 당시 건축사의 사회적 책무를 분명하게 밝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고, 인간과 자연, 사회의 조화를 도모하는 전문인"이라는 그 선언은 실로 시대를 앞서간 통찰이었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헌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선언문을 넘어, 건축사 직능의 가치체계와 실천 기준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오늘날 건축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도전과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고령화 사회, 1~2인 가구의 증가, 도시 내 데이터 기반 행정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이 건축사의 역할을 점점 더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는 공간의 미학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헌장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배타적인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열린 헌장'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건축사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헌장은 기술적 변화를 넘어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단순히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누구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야 한다.
최근 인공지능(AI), BIM, 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이 건축 설계의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반복 작업과 계산은 기술이 대신하는 대신, 건축사들은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상상하는 창의적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한 효율성 도구가 아니라, 건축사의 본질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헌장 역시 AI와 디지털 전환 시대에 부합하는 건축사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건축사는 이제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자를 넘어, 삶과 사회를 설계하는 융합형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도시계획, 환경생태, 복지와 문화, 데이터 행정 등 다학제적 협업이 필수적인 오늘날, 건축사는 사회의 다양한 층위와 소통하며 이를 공간에 구현하는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변화를 맞이하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는 여전히 ‘건축사헌장’의 정신이며, 공공성, 윤리성, 지속가능성은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변치 않아야 할 건축사의 본질적 가치다. 이러한 정신야말로 헌장을 과거의 유산이 아닌,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준점이다.
대한건축사협회 60주년의 의미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며, 다시 써 내려가야 할 건축사의 정신이다. "우리는 어떤 헌장을 가슴에 품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할 때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사람을 위한 건축', '사회와 함께하는 공간', '책임을 다하는 설계자'라는 본질은 건축사의 영원한 사명이며, 이것이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가장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