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택 -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프라이버시라는 신화, 사생활이라는 감옥
어쩌면 우리는 1가구 1주택에 갇혀버린 건 아닐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집의 형태는 너무나 익숙하다. 한 가구가 한 채의 주택에 살고, 내부는 가족 구성원만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철제 현관문은 확실한 경계선이 되고, 각 가정은 철저히 독립된 단위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런 주거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가 함께 쓴 『탈주택』에서는 ‘1가구 1주택’이라는 현대 주택 형식이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적 산물일 뿐, 절대적 이상향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노동의 형태도 가족의 형태도 변화했다. 핵가족이 중심인 주택 모델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이웃 간 단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는 기존 주거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1가구 1주택’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적 주거 모델을 제안한다. 제목 그대로, 기존 주택 형식을 탈피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끄는 건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지역사회는 점점 더 단절되고 공동체는 사라져 간다. 이웃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각자의 집에서 일어난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같은 이웃 갈등은 고조되지만 정작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야마모토는 이러한 단절이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건축과 주거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오늘날 주택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사생활 보호를 넘어, 이웃과의 관계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만다.
두 저자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살아가며 이를 회복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란 단순히 친목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는 이웃 관계가 아니다. 각 가구가 지역 경제와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핵심이다.
나카는 "주택이 경제와 분리된 한, 진정한 공동체는 형성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주택을 그저 소비하거나 잠만 자는 장소로 전락시키지 않고, 공동체의 본질과도 같은 ‘경제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마모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시키이는 일본어로 ‘문턱’이라는 뜻이지만, 한 발짝으로 넘을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택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중간 공간이다.
시키이는 그저 응접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적 장치다. 오늘날 주택이 철저히 개인화된 생활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면, 시키이는 외부 세계를 주택 안으로 끌어들이며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탈주택』은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안하는 동시에, 공간을 넘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거듭 질문하고 실험한다. 건축가는 물리적인 형태만을 설계하지 않는다.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회의 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
『탈주택』 1부에서 야마모토가 설계한 판교하우징과 강남하우징을 비롯한 건축물 7개를 분석해 그가 말하는 건축적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넘어, 지역 경제와 영향을 주고받는 건축물 2개의 구조를 풀이하면서, ‘시키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주거 모델을 탐색한다.
:: 야마모토 리켄 (山本理顕) ::
도쿄예술대학원 미술연구과 건축학전공을 수료했고 1973년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을 설립했다. 2007부터 2011년까지 요코하마국립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나고야조형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이타마현립대학, 공립하코다테미래대학, 요코스카미술관 등이 있으며 취리히, 톈진, 베이징, 서울 등에서 복합 시설, 공공 건축, 집합주택 등을 설계했다. 1988년과 2002년에 일본건축학회상을, 1998년에 마이니치예술상을, 2000년에 일본예술원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2024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과 국제예술 부문 문화청 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신편 주거론(新編 住居論)』 『권력의 공간/공간의 권력(権力の空間/空間の権力)』 『마음을 연결하는 집』(공저) 등이 있다. riken-yamamoto.co.jp
:: 나카 도시하루 (仲俊治) ::
도쿄대학원 공학계연구과 건축학전공을 수료했고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요코하마국립대학원 Y-GSA의 설계 조수로 활동했으며 2012년에 나카건축설계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16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일본관에 출품했으며 주요 작품은 SCOP TOYAMA,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공동 설계), 식당이 딸린 아파트, 가즈사키보노사토오무카이상 등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의식한 작품을 다수 설계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4년에 굿디자인 금상, 2016년에 일본건축학회 신인상, 2024년에 도야마현 건축문화상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 『두 개의 순환(2つの循環)』 『마음을 연결하는 집』(공저)이 있다. naka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