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
건축계에서 ‘리모델링보다 신축이 쉽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을 남기고 없앨지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부분 철거보다 전면 철거가 빠르기 때문이며, 최초의 건축이 가진 미감과 결을 맞추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청파동 주택은 1930년 일본인에 의해 용산구 청파동에 지어진 지상 2층, 지하 1층의 목조주택이다. 일제 식민지기였던 당시 용산구에는 일본 가옥과 서구 주택이 접목된 화양절충식 주택이 다수 지어졌고, 청파동 주택도 전형적인 화양절충식 주택 중 하나다. 다만, 청파동 주택은 광복과 문화 및 기술의 변화 등 90여년 간 시대의 흐름을 지나오며 당대의 삶에 맞춰 조금씩 변용되어 왔고, 그 원형과 변용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건축가 정이삭(동양대학교 교수,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이 청파동 주택을 한반도 풍토에 맞춰 변용된 화양절충식 주택을 뜻하는 ‘한반도 화양절충식 주택’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례로 책의 제목인 ‘나이층’은 1층 바닥면에서 발견된 15개의 재료층을 묘사하는 단어로, 이러한 시간의 층위에서는 아궁이, 연탄, 기름보일러 등 바닥 난방 방식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리모델링 의뢰를 받고 청파동 주택을 방문한 정이삭은 이 주택의 문화재적, 주택문화사적 가치를 알아보고 이에 공감하는 협업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모인 정이삭, 지연순(공사 관리 및 설계 협조, 공간모색연구소 대표), 조재량(목구조 자문, 송련재 대표)은 빠르고 편한 길보다는 잠시 멈추어 세세한 판단과 선택을 한 후, 다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건축 사진가 노경(로스페이스 대표)은 이러한 지난한 시간을 함께 따라가며 청파동 주택의 리모델링 전후 과정을 사진으로 충실히 기록했다.
‘청파동 주택에 들어서다’는 책의 내용을 안내하는 정이삭의 글에 더해, 청파동 일대의 필지 구분을 보여주는 시대별 지도와 주택의 물리적 변화를 중심으로 일괄한 타임라인으로 꾸려져 있다. 이는 청파동 주택의 저변에 자리한 개발, 생활 양식 등의 움직임을 짐작케 한다.
‘건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정이삭이 청파동 주택을 작업하며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건축가의 태도와 결정 및 실천들을 서술하고, 리모델링 전후 도면과 사진들을 소개한다.
‘구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열 세 달에 걸친 리모델링 과정을 공종별로 구분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조재량은 내외관에 쓰인 목조와 구조를 중심으로 청파동 주택이 가진 특이점을 짚어낸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외연을 넓혀주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1959년 경부터 근래까지 청파동 주택에 거주했던 신은주를 인터뷰해 주택에 얽힌 건축주의 삶과 시선을 살펴보고, ‘포럼과 전시로 남기다’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가치를 모색하고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던 포럼, 전시 등의 활동들을 기록했다. 곳곳에 배치된 노경의 건축 사진들은 주택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청파동 주택이 가진 미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 정이삭 ::
동양대학교 교수며,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다. 주요 건축 작업으로 철원 선전마을 예술가 창작소, DMZ 평화공원 마스터플랜, 연평도 도서관, 청파동 아흔살 집(킷테) 등이 있다. 다양한 건축 작업과 연구를 하며, 건축 및 현대 미술 전시에 기획자나 작가로 참여했다. 저서로는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 『하이퍼폴리스』, 『동시대 예술과 변이하는 계획들』, 『할 수 있을 때까지, 원인동』 등이 있다. @a.co.lab @isakchung
:: 지연순::
공간디자이너, 전시기획자, 변역가이며 공간모색연구소 대표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잡지 「플러스」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전통 건축에 기반을 둔 미학의 순수성을 현대에 적용하는 디자인 해법을 추구한다. 주요 공간 작업으로는 제주도 차농부집, 광주 갤러리 혜윰, 광주 DM홀 등이 있으며, 서울 청파동 주택(현 킷테)의 공사 관리 및 설계 협조를 했다. 건축과 예술의 연결과 다양한 확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longlife_design_lab
:: 조재량 ::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이수자이며, 현재 송련재 대표다. 1996년 경복궁 동궁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경회루, 근정전 중수, 광화문 복원 등 20년 남짓한 시간을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복원 및 보수공사 현장에서 보냈다. 2002년부터는 부편수로 일했고, 2016년 시작된 경복궁 흥복전 권역 복원공사에서 도편수를 맡았다. 2011년, 구룡포에 있는 근대문화역사관을 시작으로 옛 서울시장 공관(2015),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2021) 등을 수리하면서 근대건축물의 구조적인 합리성과 목조 구법의 변화, 재료와 디자인의 시대성에 주목해 왔다. 전통 목구조 외에 조적조, 철골조와 목조의 결합 등 서로 다른 재료와 구조를 조합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jaeryang.jo
:: 노경 ::
서울 출생으로 사진을 전공했다. 도시 속 변화하고 멈춰 있는 것들과 동시대 건축가들의 작업을 기록한다. 로스페이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SPACE(공간)」의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roh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