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테라건축사사무소 박윤석 건축사
일과 생활의 조화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선택지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지는 자신을 살뜰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차곡차곡 자신의 아카이브를 잘 다져야만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다. 박윤석 건축사는 테라건축사사무소를 시작하면서는 좀 더 조밀하게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테라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또 다르게 일의 밀도를 어떻게 높여가는지 들어 보았다.
“직원 2명과 테라건축사사무소를 시작할 때 직원 2명인 건축사사무소의 신입사원으로 시작했던 시간과 오버랩되었다. 포지션이 달라졌지만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나의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찬 나이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결이 다른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다.”
박 건축사는 공간건축에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긴 세월 직장생활을 마치고 2018년 과천에서 건축사로서 제2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 늦은 것 같다는 지인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시작했다. 당시 직장생활 내내 긴 출퇴근 시간에 지치기도 했고,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사무실이 있으면 아이들을 좀 더 살뜰히 챙길 수 있을 수 있겠다는 일상적인 이유들도 있었다.
“공간건축에서 제일 재미있는 직장생활을 했던 것 같다. 20여 명이 팀을 이루어 아이디어를 전개해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좋은 기억들이 너무 많다. 기획 설계나 해외 프로젝트 개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꼼뻬), 마스터 플랜, 현상설계 등 건축적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채워졌다. 그런 점에서 공간건축에 고마움이 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출근을 상기해야 하는 소속 건축사일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오너 건축사들의 여유(?)와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오픈해보자 싶었다. 지금은 제 시간을 조금 조절해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테라건축사사무소의 시작은 박 건축사에게는 직업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이전에는 좀 더 넓은 폭으로 디렉팅을 했다면 테라건축사사무소에서는 보다 디테일하게 긴밀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박 건축사는 설계의 큰 맥락은 ‘땅으로 존재했을 때가 더 났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가혹한 평가를 받을 각오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설계를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 곳(땅)이 어떤 건축물을 원하고 있는지에서 시작한다. 테라(terra)라는 이름 역시 이런 흐름에서 택했다. 어떤 건축물도 본연(本然)을 넘어설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뽐낼 수도 있고 수수하게 담백하게 드러날 수도 있는데 건물이 없을 때가 더 났다는 평가보다는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정도는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부모님 두 분 다 화가셔서 자연스럽게 그림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미대 진학은 반대를 하셨다. 대신 아버지께서 예술적인 감각과 재능을 살리면서도 직업적으로도 전문성이 있는 건축은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직관적인 스케치에서 컨셉을 끌어내고 빌드업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대형 프로젝트에서는 다소 조형적으로나 디테일에 있어 자유로웠다면, 테라건축사사무소에서는 보다 합리적이면서 실용적인 것들, 효율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편이다.”
박 건축사는 최근에는 건축사로서 할 수 있는 업무를 다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일해보는 중이다. 직원들도 설계 외의 다양한 건축 프로세스의 경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업무의 폭을 넓히면서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박 건축사는 과천에서 업무를 시작하면서 안양지역건축사회, 경기도건축사회 활동도 조금씩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좋으면 나가고 싫으면 안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을 맡겨 두었었다. 근데 열심히 나가고 있더라.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지만 사람들 속에서 배우게 되고, 문화제 업무나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얻는 경험들이 좋았다.“
불안한 경기와 혼란한 정세의 매서운 칼바람을 건축시장에서도 체감한지 오래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12월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어땠냐는 질문에 박 건축사는 “2~3년 전 쯤에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였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지인 교수들로부터 학생들의 취업을 부탁받는 전화가 늘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직원을 줄이거나 유지하는 쪽을 택하고, 학생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니 양쪽이 모두 답보 상태인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박 건축사는 현실적인 고민은 대표이사였을 때나 현재나 비슷하지만 주어진 조건에 적응해가면서 마음가짐을 유연하게 가지게 되면서는 테라건축사사무소도 지평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