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부건축사사무소 김중권 건축사
남부건축사사무소 김중권 건축사는 올해 88세로 경기도건축사회 최고령 회원이시다. 파주지역건축사회 초대회장도 역임하시는 등 건축사로서 그동안의 행보를 들어보았다.
김중권 건축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국토건설추진요원 선발 시험에 합격해 철도청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시공기술사를 먼저 합격하고, 철도청 근무 중이던 1970년도에 건축사시험에 합격했다.
“아파트 설계가 시험에 나왔는데, 그 당시 잘 안하던 이중벽으로 설계하면 되겠다 싶어 그려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험 합격 후 바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지 않고 극동건설에서도 얼마간 근무하다 1974년 서울 관악구에서 '남부건축사사무소'로 건축사업무를 시작했고, 이어 시흥으로 이전했다가 지인과 같이 1977년 파주로 오면서 현재까지 업무를 이어 오고 계신다.
1977년 협회 등록 당시 한수이북지역에는 의정부분소 하나였는데 회원이 6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분소가 하나 둘 생기면서 고양분소를 만들려고 보니 인원이 부족해 파주, 강화 회원까지 함께 하다가 고양분소가 성장하면서 2002년 즈음에 파주지역에도 제법 건축사들이 모이고 해서 19명의 건축사가 파주지역건축사회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공무원들과의 유대도 쌓고 친목도 다지려고 시작했는데, 협회 사무실도 따로 없어 남부건축사사무소 사무실 한 칸을 사용하고 예산도 받지 않고 1년을 운영했다고 한다.
2003년 정식으로 파주지역건축사회가 출범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협회가 집이고 백 그라운드가 되어주어 든든했다며 “협회가 있으니까 소속감도 있고 위안도 되죠. 한수이북에 건축사가 6명이던 것이 파주지역건축사회가 생겼을 당시 한수이북에 240명, 4반세기 동안 40배에 가깝게 인원이 늘어났고, 파주도 19명으로 시작해 86명, 비회원까지 100여 명이 활동 중인데 앞으로는 더 늘어 날거에요. 업무량은 거의 고정되어 있고 인원은 더 늘어나니 건축사들이 점점 힘들지 않겠어요? 협회를 통해서 친목을 다지고 화합해서 슬기롭게 지냈으면 합니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그런 시대로 환원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라고 전했다.
건축사로서 오래도록 일하다 보니 따로 자녀들에게 건축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건축 관련 일을 하더라며 3명은 대학도 동문이고, 4부자(父子)가 건축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셔서 아들인 김정우 건축사와 함께 같은 사무소에서 업무를 보신다. 일산 집에서 자전거타고 지하철타고 걸어서 사무실에 와서 직원들도 보시고, 지인들과 만나 담소도 나누시기도 한다고 한다.
“‘일일일선(一日一善), 십소(十笑), 백필(百筆), 천독(千讀), 만보(萬步)’하라고 하잖아요. 그 중 다 하기는 힘들어도 백필, 천독, 만보는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건축사는 정년이 없으니 건강이 허락한다면 열심히 일하면서 지낼 수 있는 멋진 직업이지 않습니까. 건축사 인원이 나날이 많아지니까 경쟁도 치열하겠지만 이타적으로 생각하고, 건축주 위주로 생각하면서 후회 없이 일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간 중간 설계하면서 어떻게 여러 문제들을 아이디어를 내서 해결했었는지 종이를 꺼내 직접 그리며 설명해 주셨다. 철도청 근무 중에 설계했던 구로차량기지 지붕을 트러스 구조를 변형해 홈통 역할도 하게 설계해 빗물로 인해 고압선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했던 이야기나 파주 적성면에 한 교회를 설계 할 때 증축과 신축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하셨는지 생생하게 설명해 주셨다.
인터뷰 다음 날 자신이 구조적으로 건축적으로 문제를 한 번에 해결 해주어서 건축주가 기뻐해 줬다며, 가끔 근처에 들러 인사를 나누며 음료 한 잔 나눌 때면 지금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데 건축사로서 보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을 빠뜨렸다며 전화를 주셨다.
건축사뉴스 김병주 편집국장은 후배로서 오래도록 선배님이 묵묵히 일해오시면서 건재하셔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건강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