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건축이야기-②

2021-06-14     이일 기자

파리의 도서관 이야기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도시라는 공간에서 도서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오늘은 프랑스 파리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프랑스 파리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시립 도서관은 57개의 일반 도서관과 15개의 전문 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립도서관 네트워크 시스템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파리의 시립 도서관이 지니는 도시 공간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측면을 살쳐보는 것이 필요하다. 파리의 시립 도서관을 역사적 관점에서 이야기 할 때는, 우선적으로 ‘포르니 도서관’을 주목하게 된다. 포르니 도서관 건립은 1883년 경 사업가 ‘에메-사무엘-포르니(Aimé-Samuel Forney)’의 기부활동이 발단이 되었다. 포르니는 19세기 말 프랑스 공예품의 상황을 재평가하고, 그 자료와 건축물을 파리시에 기증하였다. 이에 파리시는 기증 받은 자료와 건축물을 예술전문 교육의 용도로 활용할 것으로 결정하였다가 1886년 파리 시내에서 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포르니 도서관(Forney bibliothèque)’으로 개관하였다. 이 건축물의 경우 이후, 여러 번의 복원을 시도하였으나, 전쟁 등의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가 1983년도에 공식적으로 건물 전체의 복원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초기 포르니 도서관의 전문 분야는 공예와 장식 예술에 국한되었으나, 캐비닛 제작자, 도예가, 금세공가, 화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용하게 됨으로써 그림, 조각, 건축 분야까지로 확장되었다. 방대한 자료 소장과 전문 분야의 확장으로 인하여 도서관 이용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1961년에는 그와 같은 변화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포르니 도서관은 규모를 늘려서 ‘오텔 드 센(Hôtel de Sens)’으로 이전하였다.

포르니 도서관 정면 입구(사진=어정연)
포르니 도서관의 미디어실의 전경(사진=어정연)

현재, 포르니 도서관은 장식 미술 및 공예, 순수 미술과 그래픽 아트에 관한 전문적인 자료를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북유럽, 중국 등의 많은 외국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다양한 장신구 컬렉션과 19세기의 제작 기술 매뉴얼 및 각종 카탈로그를 포함한 23만 권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고, 45,000개의 임시 전시회 및 박물관 카탈로그, 1800년부터 1983년까지 25,000개의 공공 예술 판매 카탈로그, 19세기 이후 30,000개 이상의 상업 카탈로그, 주요 프랑스 예술 박람회 카탈로그 및 프랑스 및 해외 유니버설 전시회 카탈로그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건축, 디자인, 캐리커처, 패션 및 예술 시장 분야에서 4,000개의 정기 간행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포르니 도서관은 공예 및 장식 예술에 관한 문서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으로 예술 분야에서는 가장 유명한 도서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방대한 소장 자료들로 다양한 전시회를 기획하고 개최함으로써 프랑스 시민들에게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아뜰리에를 운영함으로써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희귀한 역사적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포르니 도서관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특화된 도서관으로서의 차별화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특화된 포르니 도서관은 도서관으로서의 1차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지닌 파리 관광의 한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의 역사적 건축물을 유지보수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외부의 모습을 유지하는 노력을 하는 동시에 내부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사진은 미디어실의 전경인데 주 열람실도 동일한 내부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계단의 모습(사진=어정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파리시는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기회가 많지 않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기회가 적다는 것은 새로운 공간적 수요가 발생하면 기존의 건축물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에 따라 도서관 역시 역사적인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는 도서관의 면적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으며, 위치적으로는 세느강 좌편에 집중되어 건립되는 경향이 많았다. 도서관 국장이었던 ‘기 보뎅(Guy Baudin)’이 1975년 당시에 작성한 마스터플랜을 보면 총 56개의 도서관을 구상하였는데, 최소면적이 1,500㎡의 대형 도서관이 13개, 최소면적이 600㎡의 중형 도서관이 30개, 최소면적이 300㎡ 이상인 청소년 도서관이 13개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면적 중심의 계획에 해당하는데, 1980년대에 개관된 도서관들은 이러한 면적 기준들을 준수한 사례에 해당한다.

1990년대에는 70년대와 80년대에 비해 도서관 관련 활동들이 미비했고,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시네마 라이브러리’와 ‘미디어 라이브러리’ 등이 그것들이다. 2001년부터 24개의 도서관들이 개조 및 증축 등을 통하여 새롭게 정비되었고. 2016년과 2018년에 추가적으로 두 개의 새로운 도서관이 개관하면서 총 26개의 시립 도서관이 완성되었다.

다음으로는 도서관의 성격과 기능의 유형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도서관의 의미를 조명해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건립된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그들의 영역을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노동자와 이민자들을 비롯한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문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파리의 생활에서 소외감이 적도록 하고 있다.

16개의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성인부터 어린이(유아부터 14세까지)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비디오, 멀티미디어 공간 등의 매우 다양한 컬렉션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25개의 중간 규모 도서관에는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두 곳은 청소년과 음악을 위한 자료가 있다. 각 구청에 마련된 7개의 소규모 시설은 일반인을 위한 서비스와 인쇄물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10개의 도서관은 아동기 및 청소년기의 다양한 연령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구성되어 있으며. 부모들을 위한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전문 및 유산 도서관도 있는데, 그것들 역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15개의 전문 도서관의 경우, 역사적인 건축물과 구청 내부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로는 ‘파리 시청 도서관’, ‘프랑소와-트루포(François-Truffaut) 시네마 도서관’, ‘포르니 도서관’ 등이 있다. 파리 시청 4층에 위치해 있는 ‘파리 시청 도서관(BHdV)’은 1872년 파리 행정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서 1890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고 있다. 여기에는 19세기의 다양한 원고가 보존되어 있으며, 20세기 파리 행정부의 역사, 정치인과 행정가의 논문, 법률 원고 등도 보관되어 있다. ‘프랑소와-트루포 시네마 도서관’은 포름 데 알(Forum des Halles)의 중심에 있으며, 소장가치가 있는 아카이브에 대한 대여 및 관람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탐정 문학 도서관’, ‘관광 여행 도서관’, ‘파리 역사 도서관’ 등이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 및 보관하고 있다. 2015년 10월 13일부터 파리 시립 도서관들은 온라인 네트워크 시스템 개방으로 전용 사이트를 통하여 온라인으로 디지털 책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도서관이 수행하던 기능과 역할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멀티미디어 도서관을 지향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건축적 측면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개관한 ‘사강 도서관(Médiathèque Françoise Sagan)’의 경우, 건축가인 ‘스테파니 비고니(Stéphane Bigoni)’와 ‘앙투완 모르트마르(Antoine Mortemard)’가 역사적인 건축물의 흔적에 연연하지 않고 기존의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였다. 사강 도서관은 멀티미디어 도서관으로서 지중해 스타일로 덮인 회랑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였다. 그런 의도에 의해 오래된 건물의 외관과 2개의 계단만 유지되고 모두 개조되었다.

사강 도서관의 입구(사진=어정연)
사강 도서관의 외부 정원 (사진=어정연)

강당과 전시실로 둘러싸인 열람실은 아치형 개구부의 유리 커튼 월 뒤에 숨겨져 있다. 야자수가 심어진 정원의 디자인과 뒤틀린 길을 특징으로 하는 외부공간은 파리의 중심부에서 지중해와 열대 지역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축하였다. 이러한 이색적인 공간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시와 인접한 벵센느 시의 ‘벵센느 미디어 도서관’은 2003년에 개관하여 남쪽으로는 벵센느 숲이 있는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 건축가 ‘앙리 고댕(Henri Gaudin)’의 설계로 온실, 300석 규모의 강당, 미디어 도서관, 시청 사무 공간, 리셉션 홀 및 주차장을 계획하였다.

벵센느 중앙 도서관의 입면(사진=어정연)

두 가로변에 면한 건물 사이로 내부로 진입하는 입구가 보이며, 두 건물 사이에 유리온실이 있는 삼각형 형태의 건물이 위치해 있다. 앙리 고댕의 개성적인 건축 언어가 보여 지는 건축물로서 진입부분에는 독특한 형태의 타원형 매스가 도서관의 입구를 상징하고 있다. 앙리 고댕은 바다와 돛을 상징하는 건축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벵센느 중앙 도서관의 입구(사진=어정연)
공원에서 바라본 벵센느 중앙 도서관의 전체 모습(사진=어정연)

파리의 시립 도서관은 아니지만, 1997년에 개관한 ‘프랑스 국립 도서관 (Bibliotheque de François Mitterrand)’은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에 의해 설계되었다. 세느 강변과 넓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이 도서관은 100m 높이의 4개의 타워가 거대한 크기의 가상 평행 육면체의 각도를 표시하고 있는데, 비유적으로 네 권의 책을 상징한다고 한다. 세느 강변을 조망하고 산책할 수 있는 데크 중앙에는 소나무가 심겨져 있는 실내 정원이 있다. 조망은 가능하나,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이 정원은 파리의 ‘도시 회랑’으로 불리고 있다. 타워는 매우 미니멀하고 투명한 유리로 외부를 구성하고 있으나, 서고를 보호하는 내부의 금속 판넬로 인하여 다양한 입면을 연출하고 있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내부 정원 모습(사진=어정연)
파리 국립도서관의 에스플라나드 모습(사진=어정연)

광장은 세느강을 건너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연결되어 있으며, 휴식공간과 광장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조형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파리 국립도서관으로 가는 보행자 전용 브릿지 모습(사진=어정연)

한국의 경우에는 1922년 명동에 서울 최초의 공립 공공도서관인 ‘경성부립 도서관’이 설립되었다가 1927년에 현재의 중구 소공동으로 옮긴 뒤 광복 이후에는 ‘남대문도서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이 지닌 뒤, 1964년에 현대식 도서관 전용 건물을 마련해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전하면서 ‘남산 도서관’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모든 장서는 국립 중앙 도서관으로 승계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각 지자체별로 작고 큰 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이 발달된 지금에도 대출 관련 일반도서관의 기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인 디지털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도서관의 기능의 변화와 그에 따른 도서관의 공간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파리의 도서관 사례에서 역사적인 도서관을 비롯하여 전문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유형의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았고, 정보화 사회에 맞춰 단순 도서관의 기능 범위를 벗어나 각 지역별 ‘시민들의 거실’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따라서 폐쇄형보다는 오픈형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역할이 중요해지며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홀의 공간 계획이 요구되어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양상의 도서관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남양주시에 개관한 ‘정약용 도서관’이다. 남양주시의 중앙도서관인 ‘정역용 도서관’은 1층에 카페와 2층의 음식점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창업스타트업 상점도 입점해 있다. 열람 공간 역시 오픈 공간형으로 일반적인 도서관의 공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오픈형 서가와 함께 층별 소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 열람 공간이 있다.

오픈형 열람공간, 남양주시(사진=정약용도서관 제공)
2층에서 3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남양주시(사진=정약용도서관 제공)

자료보관과 열람이라는 도서관의 고유한 역할은 유지해야만 하는 기능이지만, 사회가 변화됨에 따라서 도서관의 역할 역시 변화되어야 한다. 파리 시립도서관과 같이 미디어 또는 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각종 전시회, 연주회, 음악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과 시민참여를 이끌어 내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각 지역의 중심적 가치를 지니는 공간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각종 정보가 쏟아지고 있고 개인적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도서관은 시민의 거실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질적으로 좋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도서관이 도시 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할지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기이다.

[프로필]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어정연 교수

한양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 박사

프랑스 국립건축6대학교 건축설계 석사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학사

 

한국건축사/프랑스국가공인건축사

 

렌조피아노빌딩워크샵(프랑스, 파리) 근무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