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할 이유는 없지"
'뿌르꾸아 빠 무아!' Pourquoi pas moi
경기도 수원출신 한국계인 장 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담당장관의 자서전이 번역 출간됬다. 플라세장관 1968년 서울태생 거주기간으로 보아 수원출신이다. 한국이름은 권오복이다. 7세에 불란서로 가게되었다.
해외로 입양하듯이 일찿아 나가야 하나,?
51회 경기도건축사 총회에서 황정복 회장은 회원의 50%가 일년에 한건의 일도 없다고 한다. 3월14일기준 1440명중 720명으로 일년에 720건이 추가로 일거리가 나온다 해도 50퍼센트는 변하지 않으것 같다.
저성장기
일은 계속 줄어든다. 옷을 수선해 입듯이 건물도 수리하는 일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도 탤리에신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사례가 있다. 안도 다다오는 처음 인테리어 일을 했는데 이일은 육체노동을 수반한다. 이광노사부는 젊어서 노동일도 해보고 광산에 가서 탄광일도 하면서 진로 조종을 하였다. 국민화가 이중섭도 부산부두노동을 한 적이 있다.
필자도 환경정리, 화단만들기를 잘했으며, 젊어서 안양 LG신축현장에서 열흘간 바닥다지기 위해 커다란 세멘트 로라들 끌어 본적이 있다. 졸업여행을 못가고 안양문화다방에서 디자인하고 인테리어를 같이 한적이 있다. 부족한 학교교육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상주감리를 겸하면서, 직영공사를 대행해주면서 수수료를 받고 건축을 배우게 되었다.
현건축교육은 못하나 박아보지 못하고 건축학과를 졸업한다. 미국가정집 차고에서 연장을 보고 만지고 자라는 환경이 우리나라 집에는 없다. 미국은 과학,기술,건축의 교육이 차고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내가 못할 이유는 없지" '뿌르꾸아 빠 무아!' Pourquoi pas moi
현장에 나가 목수조수로 일해보자. 아마도 여기서 합리적인 설계들 배우고 노동의 가치를 인식할 것이다. 10년 목표로 반나절. 하루. 주2회정도 하다보면 전문가가 될것이다. 이리되면 설계도 인정받고 목공일도 맡을수 있고, 소규모공사도 잘할수 있고, 자금도 만질수 있다. 사회활동 길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내공사도 할수있다. 실제 안양지역건축사중에는 자신의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설계와 공사를 같이 병행하는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원룸분양에도 회원들과 같이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 질문해 보니 자금을 만질수 있기에라는 답이 나온다. 시기적으로 투자검토는 필수이다.
"건축사는 전업건축가이다"
월급이 없다. 퇴직금도 없다. 명예도 없다. 3무직업이다. 유명한 전업건축가는 전국적으로 1년에 0.5명정도 나오는 직업이다. 여기에 선량하고 착한 건축사가 희생되기에는 사회적 리스크가 크다.
건축사의 강령을 지키며 소규모 건축노동도 해보고, 건축공사에 건축사가 적극 참여하여 자기디자인을 실현해보고, 건축하는 것도 여러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