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으로 말하는 건축가 류춘수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 한국적인 감수성에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드로잉으로 말하는 건축가' 류춘수 선생님을 만나 건축계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보았다.

- 선생님은 '建築士' 를 '建築師' 라고 쓰세요. 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선비 '士'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어요. 스승 師가 맞다고 생각해요.
왜 스승 師를 써야 하느냐. 건축계의 스승이 건축사 이기 때문이에요. 건축사가 지식만 갖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기술, 공법도 알아야 하고 자연과 환경도 알아야 하고 설계에 대한 지식은 말할 필요도 없고, 건축주의 마음도 읽어야 하죠.
  스승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건축사라는 이름을 쓸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建築師라고 쓰고 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 리모델링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한말씀 해주시면?
  맞아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부시고 새로 짓고 있어요. 그런 몰상식한 짓을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죠. 그것을 설계한 사무소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건축사 윤리에 어긋난 것 아닌가요? 해당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이 그것을 승인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참여해야 하는 것이에요. 현상설계를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 못해 건물을 고칠때도 설계자에게 문의를 해야 맞는것이라 생각해요. 정부에서 그 과정을 생략 했더라도 설계하는 사람은 설계자의 의도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계 최초의 케이블 돔 공법으로 만든 건축물이에요. 한국에서는 몰라도 세계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꼽고 있죠. 1988년 올림픽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고요. 내 개인적으로는 세계가 주는'1988 QUATERNARIO 88 국제건축상 금상' 을 받은 작품입니다. 세계적인 작품상을 받은 건축물이고, 실질적 올림픽 기념비적인 건물이며, 세계 최초의 케이블 돔 구조물이에요. 이런 건축물을 어떻게 그러게 쉽게 부시고 개조할수 있다는것인가요? 그것은 대한민국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강촌휴게소도 설계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부쉈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다 하려면 우리나라가 너무 창피해서 다 할수가 없어요. 일본의 경우 조그만 박물관 입구에도 설계자의 이름을 써붙여 놓습니다. 그렇게 건축가를 대접해야 하는것입니다. 건물에는 건축가의 혼이 담겨 있거든요. 서울 올림픽 경기장 안에 어디를 가도  설계자의 이름이 없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의 동상은 있어도 설계자의 이름이 없는 이런 나라. 이런곳에서 무슨 건축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어요?

  지난 9월 24일. 제주도에서 김창렬 화백(물방울그리는 화가) 박물관을 오픈했어요. 그 박물관은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분이 설계를 했습니다. 시상식을 할 때 그 건축가를 초대 했지만 식을 할때는 아무도 소개를 해주지 않았어요. 앉을 자리도 없었어요. 테잎 커팅할때도 도지사, 지역국회의원, 심지어 동네이장까지 컷팅식을 하는데 설계자는 참여 시키지 않았어요. 이게 문화시설인 박물관 오픈식에서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내가 만약 화가였다면 설계자를 꼭 대접하고 불렀을거에요.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국토부에서 내가 상을 받을때 '내가 이런 나라에서 건축문화부 상을 받으니 스스로 창피합니다' 라고 말했어요. 그때 많은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왔었는데 아무도 글을 쓰지않았어요. '이런언론, 이런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으니 부끄럽습니다' 라고 말하는것. 얼마나 부끄럽고 웃긴 이야기 인가요? 이런 수준의 나라에서 세계적인 UIA행사를 어떻게 할수 있을까요? 참 답답합니다.

- UIA얘기를 해주셔서 말인데요. 세계 건축사의 축제 UIA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지금 UIA관련해서 건축사협회, 건축가협회, 건축학회에서도 관여를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어요. UIA는 건축가들의 단체이고 여기서 말하는 건축가는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을 디자인 하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건축사협회, 건축가협회, 건축학회 모두 참여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건 행사의 본질적 취지와 조금 맞지 않다 생각해요.

  UIA에 학회는 참여할 자격이 없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가 협회도 UIA의 지부처럼 되어 있는데 이 기회에 건축가 협회와 건축사 협회가 합해졌음 좋겠어요.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사만이 건축가라는 이름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건축사 라이센스가 없는 사람들도 건축가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잘못된거에요.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구조나 인테리어등을 하는 사람이 건축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건축가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 그렇다면, 그런사람은 '명예건축가' 라고 써야지요.  건축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건축가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의 격을 낮추는 것입니다. 건축가라는 이름은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만이 쓸수 있는 것이에요.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가.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랑 건축가는 다른것입니다.

  건축사가 아닌 사람이 UIA의 주축이 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창피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 기회에 건축사협회, 건축가 협회가 통합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건축가 협회 국제 분과위원장 활동도 했었습니다. 또 예전 건축사협회 부회장을 맡았던 조건이 건축사협회와 건축가협회를 통합하는 것을 임기 안에 하는 조건이였어요.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UIA총회를 놓고 통합 해야 하죠. 건축가 협회의 인물적 파워와 건축사 협회의 자본적 파워가 합쳐져야 합니다. 라이센스 있는 사람만이 건축가 라고 불릴수 있는것이고 라이센스 없는 사람은 명예건축가 라고 해야 하는것입니다.  라이센스라는 것은 제도이며 그 제도를 통과한 사람만이 일정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회적 규율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5년제, 4년제의 건축공학과를 졸업하면 건축사 시험 응시 자격이 없다고 해요.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4년제 졸업하면 근무 경력을 더 보고 시험자격을 준다거나 5년제 졸업하면 근무경력은 조금 덜 되도 시험자격을 준다는 것 자체는 좋아요. 하지만 건축과 건축공학과. 디자인을 배우는과. 공학적 학습을 하는 과를 구분해 놓으니 교육적 효과도 잘못되었다고 할수 있어요. '공학'과 '디자인'은 함께 가야 합니다. 잘못된 교육이 되고 있어요. 교육 역시 고쳐져야 합니다. 예전에 영국 AA스쿨의 워크샵을 가보았어요. 각종 건축재료를 쌓아놓고 직접 체험할수 있는 구조입니다.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스쿨에서 그렇게 공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죠.

  건축은 디자인과 공학이 함께 가야 합니다. 인테리어 하는 사람이 건축가 협회에 있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건축가는 다른 사람이 붙여주는 존경스러운 이름입니다. 공식적으로 라이센스가 없는 이들이 쓰면 안되는 것이지요

- 봉화에 영국 대사까지 모셨습니다.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요즘 집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있는 집은.  전부 '자위행위의 설계'를 하고 있어요. 자기 좋으려고 설계하는 것이죠. 사는 사람은 감동이 안올수 있는데 자기좋으려고 해요. 마스터베이션 아키텍쳐. 그러고 있다는 거죠. 상대가 좋아야 합니다. 사랑도 상대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 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죠.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은 줄여야 합니다.

  건축주는 바뀔수 있습니다. 주변 풍경이 내 집과 맞는다는 느낌이 오도록 해야 합니다.
설계자들이 자꾸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고 있어요. 이건 아니죠. 서울시청 같은 건물. 그야말로 '자위건축물'입니다. 사는사람도 불편하고 보는사람도 기분 나쁘고 기존 건물과의 맥락도 맞지 않습니다. 그것을 선정하는 시장이나 심사위원들, 그렇게 디자인 한 사람. 모두 같은 사람 아닌가요? 나도 서울시청 지명 건축가중 하나였어요. 나는 확신합니다. 내안이 가장 멋있었어요.
  서울시청건물은 현상설계기준 위법건축물입니다. 결과도 좋지않았죠. 법을 위반해서까지라도 좋은 디자인을 뽑았다면 모르겠지만 법도 위반한 불편한 결과물. 이건 아니지 않나요?

  자하하디드 DDP도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건물은 막막한 사막에 가져다 놨다면 멋있었겠지요. 주변 풍경도 있고 허허 벌판에 조각품 같이 갖다놓았다면 훌륭했겠지요. 컨텍스트가 배제된 건물로 보여야하는 건물을 서울 한복판에 갖다 놨어요. 역사, 전통, 추억, 교통, 소음, 컨텍스트를 무시한 건축물이죠.

  건축물은 나 좋아서 하는것이 아닌 상대가 좋아야 하고 그 도시를 읽고 풍경을 읽고 추억을 읽어야 해요. 그게 건축물 입니다.

  류춘수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길 나는 마스터베이션 아키텍트는 아니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설계한 건축물에 가서 차한잔 하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둘러보며 이들은 내가 설계하며 느낀 그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지, 내가 만들어낸 공간안에서 과연 즐겁고 행복할까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였다.

  류춘수 건축가님과 같은 큰 거목을 만날수 있었다는것이 그리고 그분의 철학과 소신을 들을수 있었다는것이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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