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에서 그동안 부당하게 진행되어온 문제 중 ‘용역대가’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자 한다.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하여 낙찰을 받아 업무 착수에 들어가면 기본설계가 없이 실시설계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발주처에 항의하면 관례에 따른 것이며 이미 결정된 것은 정정이 어렵우니 다음부터는 참고하여 발주할 것을 약속했지만, 담당 주무관이 바뀌고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 필자가 받은 용역은 “oo 지하주차장실시설계”로 50억 원의 공사비가 책정되었는데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해 보니 기본설계가 없는 실시설계였다. 예전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똑같은 답변을 듣고 용역을 시작하였다.

여러 번의 보고회와 자문회의를 통해 계획안을 확정하게 되어 용역 기간 이내에 끝나기가 어려워 용역중지 상태로 6개월 이상 업무를 진행하는 중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발주청의 담당관이 용역비를 아낀다고 칭찬을 받을까 이건은 아닌 것 같고,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생각이 깊어진다.

 

발주하는 타 기관의 공무원인 지인에게 ‘기본설계가 없는 실시설계’를 왜 발주하는가를 물어보니, 지인의 답변은 ‘기본설계를 용역에 넣게 되면 용역 기간과 용역비용이 늘어나게 되니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기본설계 없이 발주된다는 것이다.

답변을 듣고 난 후 이해가 왔다. 대부분 지자체의 경우, 현 단체장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임기 내에 성과품을 보이고자 용역 기간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 하거나 아니면 행정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어려워서 넘어가고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자.

이번 용역의 ‘용역원가계산서’를 살펴보니 용역비 요율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며 실시설계의 요율만 적용되고 기본설계 요율은 제외되어 있었다.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의 별표1은 건설부분의 요율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및 공사감리로 나누어져 있고, 본문에는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동시에 발주하는 경우와 기본설계를 시행하지 않는 실시설계를 발주하는 경우도 언급하고 있어 기본설계는 제외될 수 없는 항목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니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고 결국 상부 기관에서 질의회신을 받아오면 기본설계에 대한 부분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권위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세 군데에 문의를 해 보았지만 각기 전문적인 사항이므로 세부내용을 알 수 없다고 다른 부서로 패스하여 지금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질의를 해서 답변을 받아 결정하자는데 발주처와 합의를 본 상태다.

산업자원통상부 역시 명쾌한 답변을 해 주련지 아니면 다른 부처처럼 또 다른 곳으로 패스하게 될는지…

 

나라장터에서 ‘실시설계’란 용어로 검색하니 기본설계 없는 실시설계가 제법 많이 보이는데 과연 이 용역들이 기본설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번에는 반대로 ‘기본설계’로 검색해 보니 찾아보니 수없이 많은 용역 중에 ‘00 단지조성 기본설계’ 한 개가 보이며 순수 건축용역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본설계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해서 입찰공고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며 보다 많은 건축설계용역이 기본설계 없이 실시설계만 발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로 나누어져 있는 ‘대가기준’이 일선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이 낮은 건축설계비는 발주처의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결과는 대한민국의 건축문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되돌아 올 것이다.

 

건축설계가 국가문화산업의 중요한 요소인데 왜 토목사업과 대형사업과 같은 대가 요율로 처리되고 있는 것인지 아쉽다.

문제의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의 「엔지니어링 대가의 기준」이외 건설교통부에서 만든 고시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 있어 이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데 왜 외면하고 있을까?

건교부의 고시를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는 이전 「건축사용역의 범위와 대가기준」을 폐지하고 만든 것으로 대신 할 기준으로 2009년 3월부터 시행되어 약 8년이 지나고 있다.

내용에서 설계업무는 기획업무, 건축설계업무, 사후설계관리, 발주자의 요청에 따른 업무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중 건축사사무소의 주 업무인 건축설계부분은 3단계로 계획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로 구분된다.

이 3단계 중 ‘중간설계’란 생소한 용어가 보이는데 중간설계가 무엇을 의미하고 실제로 일반 건축사사무소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은 용어이며, 관공서에서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라장터에서 ‘중간설계’란 용어를 치고 검색해 보면 결과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왜 사용되지 않은 중단단계를 만들어 넣었을까?

물론 건축사들의 권익을 위해 포함된 항목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인해 권익이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서 건축설계를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로 나누어져 있어 일선에서는 이를 발주처에 유리하게 실시설계만을 발주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중간단계가 들어가서 앞으로 기본설계와 중간설계가 없는 실시설계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협회는 건교부와 상의하여 대가기준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여야 하며 건축설계용역이 ‘산업통상자원부의 건설부분’을 아닌 건교부의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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