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신선한 10월이 오면 전국 곳곳에 축제가 열리지만 모든 축제가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고 몇몇 유명한 축제만 주목을 받는다.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서울세계 불꽃축제’와 ‘정조대왕 능행차’를 꼽을 수 있는데 ‘정조대왕 능행차’는 예년엔 수원에서만 진행되었던것과 달리 올해는 여러 지자체가 참여하여 가두행렬이 서울에서 수원까지 이틀 동안 이동하는 글로벌한 축제로 펼쳐졌다.

가두행렬은 세계 곳곳에서 주목을 받는 행사방식으로 종교의 의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힌두교의 인도 및 네팔등지에서는 신상(神像)을 수레에 태워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있고, 기독교에는 프랑스의 니스, 브라질의 리우, 미국의 뉴올리언스등이 유명한데 지금은 종교와 인종의 차이를 넘어 국제적 축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두행렬인 ‘정조대왕 능행차’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왔는데, 올해는 화성을 축성한지 220주년이 되어 그동안 수원에서만 열렸던 행차의 재현이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수원 화성의 연무대까지 이르는 전 구간에 걸쳐 재현하게 되었다.

전구간 안내도

을묘년(1795) 능행차

을묘년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의 탄생 60주년으로 환갑이며, 정조가 즉위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로 경사가 겹쳐 성대하게 기념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정식 왕과 왕비가 아닌 부모의 회갑연을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있는 궁궐에서 성대하게 치르기에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정조는 행사의 장소를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화성으로 결정하였다고 본다.

을묘년 이전에 수원화성에 신하들을 대동하고 6번의 방문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행차였기에 그 이전의 행차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성대하게 준비하게 된다.

회갑연 행사를 위하여 수원화성행궁의 대대적인 수리와 증축을 하였고, 어가행렬과 화성행궁에서의 행사에도 많은 투자를 하였다.

당시 사용한 예산이 장안문 건설비의 절반 정도였으니, 지금 장안문을 새로 축조하면 약 50억 원의 금액이 소요될 것임으로 그 절반인 약 25억 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이때 모든 행사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인데 내용 중 반차도에 의하면 1,779명의 인력과 말 779필이 그려져 있고 행사에 동원된 명단은 약 6,000여명 이르며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이들은 현지에 먼저 가서 준비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렬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을묘년(1795)의 행차는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양력 3월 29일~ 4월 5일) 8일간에 이루어졌으며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이동은 보통 하루에 끝나지만 어머니를 모신 가마가 있어 이틀에 걸렸다.

이동구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창덕궁에서 시작하여 숭례문(남대문)과 용산을 거쳐 노량진에서 임시로 만든 배다리를 건너고 당시 노량행궁인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다시 움직여 대방동을 거쳐 시흥행궁(현재 시흥5동사무소 근처)에서 머물렀다.

이튿날 윤 2월 10일 다시 시작한 행렬은 석수역 부근을 지나 만안교를 거쳐 사근행궁(의왕시 왕곡동 일대)에서 점심을 먹고 지지대 고개를 넘어 장안문으로 들어와 수원화성행궁에 도착하게 된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13번이나 방문하였는데 주로 방문시기가 1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농사철을 피하기 위함으로 일반적으로 정월이나 2월에 해오던 관례에 따른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을묘년은 윤 2월에 방문하는데 아마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길이라 추운 겨울을 피하면서 모내기 시점의 바로 앞에 일정을 잡게 되었다고 본다.

참고로 어머니 혜경궁의 생일은 6월 18일이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생일은 1월 21일로서 수원화성을 방문한 윤 2월과는 관계없어 이 일정은 어머니와 농번기의 백성을 고려한 결과로 볼수있다.

 

능행차 재현

을묘년 ‘정조대왕 능행차’는 봄에 이루어졌는데 반해 가을에 행사를 재현하는 이유는 경기도청의 이전과 관계가 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지방으로 이전을 결정하게 되는데 인천과 수원이 유치경합을 벌였다.

마침내 수원으로 결정되고, 경기도청사의 기공식이 1964년 10월 15일에 시행하고 수원시는 이날을 ‘수원시민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게 된다. ‘수원시민의 날’은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1970년대에 ‘정조대왕 능행차’가 접목되면서 능행차가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 하게되고 더불어 행사 일정도 '수원시민의 날'과 연계 된 가을에 재현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능행차는 더욱 주목을 받게 되고 한층 더 발전하게 된다.

한편 1995년 구로구에서 독립한 금천구는 역사문화에 대한 의식 고취를 위해 정조가 머물렀던 시흥행궁에 대하여 복원을 꿈꾸고 있었고, 2012년부터는 자체적으로 ‘정조대왕 행차’를 시현도 하였다.

2016년은 수원화성이 1796년에 완공되었으니 축성 220년이 되는 특별한 해로 수원시는 ‘수원방문의 해’로 정하고 ‘정조대왕 능행차’의 전체 구간 복원을 실현하고자 구간에 관련된 지자체에 협조를 구하게 되었고, 적극적 참여의사를 가진 금천구와 더불어 서울시까지 참여하여 3개 연합지자체의 주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지자체별로 기술감독진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공식참여 인원이 3,100명, 말 400여 필이 동원되어 대규모의 가두행렬이 되었다.

 

10월 8일(토요일) - 서울은 강북, 강남의 2개 구간

강북구간은 오전 행사로 창덕궁을 출발한 행렬은 숭례문, 서울역 앞, 신용산역 앞을 지나 한강의 노들섬까지 가고 그곳에서 여러 행사를 하였다.

오전행사 중 행렬이 배다리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 노들섬으로 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물론 당시의 모습처럼 완벽한 재현은 아니지만, 한강대교 북단에서 다리의 중간에 있는 노들섬까지 군용부교를 이용한 배다리가 만들어져 행사 후에도 다리를 건너는 체험을 많은 사람들이 하였다.

노들섬은 당시에는 없었고 이후에 새로 생긴 섬이지만, 이곳이 행사의 중심이 된 것은 한강의 남쪽에 있는 용양봉저정(노량행궁)의 환경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용양봉저정은 지금 한 건물만 남고 나머지 많은 건물이 없어졌고 장소 또한 협소하여 노들섬이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오후 일정인 강남구간은 재정비한 행렬이 노들섬을 떠나 동작구청, 장승배기, 보라매역, 구로디지털단지역, 시흥IC를 거쳐 시흥행궁터에 도착하여 서울구간의 행차가 끝났다.

서울구간 안내도

10월 9일(일요일) - 경기는 안양, 의왕, 수원 1, 수원 2 등 4개 구간

안양구간의 행렬은 많은 인원이 준비하고 정렬해서 출발하기 위하여 시흥행궁터가 아닌 금천구청에서 출발하였다.

이 구간에는 당시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위해 만든 만안교가 있는데 지금의 위치는 1번 국도를 만들면서 이전한 장소이다. 그래도 의미 있는 만안교에서 준비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안양, 의왕구간 안내도

이어 안양행궁터로 알려진 안양역에는 올여름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에 대해 하소연하는 상황극과 정조를 습격하는 자객을 막는 ‘자객대적공방전’등 여러 공연이 큰 호응을 받았으며 유한양행 군포중앙연구소 앞까지 진행하여 안양구간을 끝냈다.

의왕구간에서는 새로운 팀들로 구성된 행렬이 바로 시작하였고 사근행궁터가 있는 곳으로 알려진 의왕시청별관 사거리에서는 공연 무대가 마련되어 사물놀이패가 나와 정조대왕 행렬이 도착하기 전에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지지대 고개를 넘어 북수원의 노송지대까지 가서 의왕구간을 마무리하였다.

수원구간 안내도

수원 1구간은 노송지대에서 출발하여 만석공원을 거쳐 수원종합운동장까지 행진하였다.

수원 2구간에서 재정비한 행차는 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장안문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받고 성안으로 들어가 행궁광장에서 큰 공연을 하고 종각을 거쳐 동장대에서 가서 행사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와 그 뒤를 따르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모여서 뒤풀이 공연을 보면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수원화성은 하루 종일 축제의 분위기였다. 행렬은 종합운동장에서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하였으나 장안문과 성안의 정조로에는 차량통제가 일찍부터 시작되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점심때부터 인도를 점령하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가장 뜨거운 환영을 하였다.

연합지자체의 축제로 승화된 정조대왕 능행차가 남긴 흔적들

2016년은 수원화성의 축성 220주년이 되는 뜻 있는 해로 그동안 수원에서만 재현했던 정조대왕 능행차가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화성까지 재현되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여러 도시에서 정조가 능행차시 백성들의 의견을 듣는 격쟁(擊錚)을 재현하여 능행차가 개인의 일이 아닌 백성과 소통하는 방법이라는 선조의 지혜를 알게 해 준 점이다.

많은 준비로 성공적인 축제를 하였으나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아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주제가 ‘능행차’인데 능에는 가지 못한 점이다. 수원화성의 시작은 사도세자 묘가 이장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사도세자는 한 번도 축제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화성시도 참가하여 세계문화유산 융건릉이 건장함을 보여 주였으면 한다.

두 번째, 축제의 홍보문제로 인터넷에 ‘정조대왕 능행차’를 찾으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만 나오고 안내지도는 서울의 강북구간과 강남구간을 위주로 설명되어 있어 안양구간과 수원구간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행사를 진행한다면 수원시도 ‘정조대왕 능행차’를 ‘수원화성문화재’의 한 분야로 소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돌출시켜 타 지자체와 통합하여 홍보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고 가까고 편리한 곳에 가서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세 번째, 축제를 주최한 지자체가 서울시청과 금천구 및 수원시였다. 행렬이 지나가는 서울의 용산구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가 있었으나 참여가 미흡했고 경기도 역시 안양시와 의왕시도 관련이 깊었는데 주관 지자체에서 빠졌는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관련 지자체가 모두 참여하는 연합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여기에 화성시도 참여하여 융건릉이 ‘정조대왕 능행차’축제의 한 부분이 되어 진정한 복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수원건축사회 현수막과 행렬

수원건축사회는 정조의 행차를 맞이하기 위해 김영복 수원협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건축사들이 참여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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