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의 문’ 제1대 태조 건원릉(健元陵)

문 화 재 : 사적 제193호

위 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능의형식 : 단릉

능의조성 : 1408년(태종 8)

 

구리시에 위치한 사적 제193호 동구릉에는 건원릉(健元陵)을 포함하여 총9개의 능이 있다. 구리시 검단산 아래 자리잡은 동구릉은 천하의 명당으로 손꼽히며, 그중 혁명가 태조 이성계가 누워있는 건원릉은 아홉 개 동구릉 중에서 가장 깊은 곳,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매표소에 들어서서 홍살문, 수릉, 현릉을 지나 약1.5km 이르면 건원릉(健元陵)을 만날 수 있다.

조선왕릉 40기중 능호가 유일하게 두 글자이며, ‘건健원元’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굳센 우두머리 태조를 지칭한다. 능호에서 느껴지는 것 만큼이나 능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천하의 맹장 태조가 부자간의 반목과 갈등(왕자의난)으로 말년에 권력의 맛을 맘껏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태조는 1408년 9월 9일 원치 않은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아들 태종(이방원)은 태조가 죽기 전 고향 함흥에 묻어달라는 유언조차도 무시했으며, 오히려 개국시조를 멀리 떨어진 함흥에 묻을 수 없다는 이유로 급명을 내려 최대의 국책사업을 벌였다. 당대 뛰어난 풍수고문 하륜(河崙)과 궁중건축가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왕릉을 조성케 하였던 것이다.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의 현릉(玄陵)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다. 정면에 홍살문이 있다. 여기서부터 성역이니 악귀는 물러가라는 표시다. 홍살문 지나 왕이 능으로 오르는 참도가 있고, 직선으로 들어서면 제를 올리는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 남쪽으로는 제의 준비를 행하는 3칸짜리 수복청이 있으며 그 옆에는 용무늬 머리가 얹혀진 태조의 신도비가 비각안에 세워져 있다. 능은 3면의 곡장 안에 봉분을 안치했으며, 억새로 덮혀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능침에는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는데, 병풍석에는 십이지신과 영저 및 영탁 등을 새겼다. 병풍석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와 석양이 네 마리씩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석호와 석양은 밖을 향하고 있는 형상으로 수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이 있는데, 혼유석 밑에는 도깨비가 새겨진 북 모양의 고석 5개가 놓여 있고 양 옆으로는 망주석이 한 개씩 서있다. 중계에는 장명등과 석마 한 필씩이 딸려 있는 문석인이 놓여 있고, 하계에는 무석인과 석마가 양쪽에 놓여 있으며 가운데에는 정중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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