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문화시설의 의의와 최신 트렌드

공공문화시설의 의의와 최신 트렌드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학부 이을규 교수

공공문화시설의 무용론

일본에서는 “하꼬모노”라는 말이 있다. 공공시설을 가리키는 속어로써 공공시설을 약간 비꼬는 말인데 “상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예산이 많아서 주민의 요구와 상관없이 그냥 지어진 상자갑 같다는 의미로 불려진다. 일본의 버블시대에 예산이 많아서 그 시기 공공문화시설이 많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용률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것은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해서 주민들이 필요한 공공문화시설이 아닌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기획해서 지었기 때문에 이용률이 높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도 많은 공공문화시설이 건립되었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꼼꼼하게 수렴해서 건립한 경우는 드물다. 역시 지자체공무원들이 주체적으로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계공모나 입찰에서는 설계지침서 상의 전체 건물의 용도가 기능을 규정짓는데 이 지침서는 누가 작성하는지 보면 일부 설계사무소가 제안하지만, 전체적인 규모는 공무원이 결정한다. 공연장은 심하게 말하면 지자체장이 1,500석의 공연장, 혹은 인근 시(市) 보다는 크게 지으라고 한마디 하면 그 정도 연면적을 목표로 소요실을 끼워 맞추는 식의 지침서를 결정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대공연장, 중공연장, 소공연장으로 연면적을 채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대공연장을 얼마나 이용하는지 한 번 살펴보라. 1년에 반도 차지 않는 공연 프로그램이 허다하다. 일반시민들이 관심도 갖지 않는 프로그램들. 이런 건물에 적게는 500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을 건설비용에 사용하고, 매년 유지관리비에 5억 원이나 10억 원씩 사용해야 하는가. 이런 현상이 전국 각 지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잘못은 누구의 잘못인가? 일단 사업을 진행시키며 사업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지자체의 책임이 제일 크고, 사업수행 과정에 관계된 저를 포함한 건축전문가들의 책임도 없을 수는 없다. 공공시설 무용론에는 반대한다. 공공시설은 필요하다. 그 기능과 입지 등 공공시설 건립에 기본적인 원칙만 지켜진다면 공공문화시설은 시민들에게는 많으면 많을수록 편리하고 시민들의 생활이 풍성해진다.

공공문화시설 건립의 기본원칙

공공문화시설은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광의의 공공시설이라고 하면 도로, 공원, 항만과 함께 도서관, 미술관, 콘서트홀을 모두 포함하므로, 본 글에서는 시민들의 문화 활동에 관련된 시설에 한정해서 정의하고자 한다.

공공문화시설의 의의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가가 일반 국민들의 최소한의 문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 건립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하겠다.

(1) 자유와 평등의 원칙
(2) 무료의 원칙
(3) 학습문화기관으로서 독자성의 원칙
(4) 직원 상주의 원칙
(5) 평등한 지역배치의 원칙
(6) 다양한 시설정비의 원칙
(7) 주민참가의 원칙

위와 같은 원칙은 앞에서 언급한 국민들의 최소한의 문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으로써 이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1)의 원칙과 (2)의 원칙은 아마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정신일 것이고, (3)의 원칙은 국가나 기관의 정치적 관섭이나 여러 규제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이다. (5)원칙은 지역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이고, (7)의 원칙은 운영에 있어서 주민들이 원하는 운영방식으로 하기 위한 원칙일 것이다.

지금도 많은 공공문화시설이 건립되고 있지만 이 원칙을 모두 잘 지키는 공공문화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우리들은 미술관, 콘서트홀, 도서관 등 공공문화시설에서 개최되는 프로그램들을 자주 이용한 적이 없다. 이용했더라도 콘서트홀이나 오페라극장의 입장권은 너무 비싸다. 보고 싶은 오페라나 콘서트 입장료는 무료는 고사하고 10~20만 원 이상이다. 이 정도면 일반 서민들로서는 이용하기 부담스럽다. 지역의 미술관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있더라도 관심을 끌 수 있는 전시회는 대도시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그마저도 입장권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도서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운 좋게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하더라도 늘 시험 공부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여유 있게 책 읽을 공간도 없다.

공공문화시설 입지가 불편하고

우선 도서관이나 시민회관, 구민회관 등의 시설 입지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입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설치되어 있다하더라도 이용하기 불편하다. 우리나라의 공공문화시설의 현실이 다 그렇다. 국유지, 시유지 등 옛날에 가지고 있던 입지 좋은 부지들은 그 당시 단체장들이 처분하거나 다른 용도의 시설로 다 사용한 경우가 많아서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부지들은 고갈되어 주변 공원녹지나 관리지역을 이용하여 공공문화시설을 건립함으로써 자연히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입지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용률 저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건축물을 크게 짓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큰 집, 큰 차, 큰 공공시설 등 우리들은 필요 이상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큰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지방공항의 운영적자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공항은 대규모 공공사업인데 자기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타당성분석을 대강하고 건립하겠는가? 예를 들어 건축 설계하는 분이 200억 원짜리 상가 건물을 분양이나 입지도 생각하지 않고 외곽지 한적한 곳에 대출받아서 대충 대충 짓겠는가? 아닐 것이다.

건립 후 돈 먹는 하마

이용률이 저조하다고 관리비가 들어가지 않는가? 심하게 말하면 1년에 1번 사용되든 100번 사용되든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관리비는 다고 차이는 있겠으나 크게 보면 비슷하다. 즉 건립하는데 건립비가 20~100억 원 소요되고 마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돈 먹는 하마가 된다. 문제는 필요이상으로 대규모로 건립해서 운영관리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으면 이용을 빈번하게 하여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면 세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셈이 되어 그나마 아깝지는 않다. 그러나 막상 지자체에 있는 문화회관을 이용하려고 하면 이용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대규모공연장은 1년에 90%  이상 객석이 가득 차는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성황리에 마친 프로그램이 수입으로 지자체로 들어오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데가 많다. 기획사 배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지자체는 대관업무만 하기 때문이다. 즉 공연장만 대여해 주기 때문에 일정금액을 지불한 기획사가 비싼 입장료는 수입을  다 가져간다. 그럼 기획사는 흥행이 될 만한 대도시 위주로 인기 있는 콘서트나 오페라를 기획하기 때문에 지방도시는 이런 프로그램을 볼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일부 구민회관이나 시민회관은 주말에는 결혼식장으로 빌려줘서 대관실적을 올리려고 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재미없는 어린이 영화를 무료로 개방하여 이용률을 올리고자 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공공문화시설 이용률을 조사 한 적이 있는데 건립 후 한 번 도 만석이 된 적이 없는 시설이 적지 않다.(가끔씩 대형 이벤트를 무리하게 유치한 경우 제외)

21세기 미술관(건축가_SANAA)(사진=이을규)
21세기 미술관(건축가_SANAA)(사진=이을규)
21세기 미술관(건축가_SANAA)(사진=이을규)

최근 문화시설의 요구사항

 최근 일반 시민들이 원하는 문화시설은 어떤 시설일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서관을 예를 들면 카페처럼 편하게 쉬면서 커피를 읽거나 책이나 잡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은 어떨까? 미술관이라면 어떨까? 딱딱한 미술작품 감상뿐 만 아니라 편히 쉬다가 심심풀이로 그림이나 작품 감상을 할 수도 있는 미술관은 어떨까? 이러 형태의 도서관이나 미술관이 외국에는 최근에 환영받고 있다. 즉 「힐링의 장소」로서의 공공문화시설이 최근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차츰 이러한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나 공공시설에서는 그런 기능보다는 도서관은 꼭 책을 대출하거나 공부를 해야 하고, 미술관은 미술 감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가나자와에 건립된 21세기 미술관은 여러 가지로 소개가 되곤 하지만 나는 건축이론 교수로써 지역에 개방된 친근한 미술관으로써 그 장점을 소개하고 싶다. 21세기 미술관은 동네 주민들이 언제나 산책하듯이 미술관을 들러서 편하게 쉬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들리기 쉬운  즉 접근성이 좋은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 전시실이 유료전시영역과 무료전시영역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무료 영역에는 그림과 같이 앉아서 외부 개방된 정원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공간과 연못 밑의 공간이 보이는 재미있는 발상의 연못이 있다. 특히 이 연못은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된다. 이렇듯 쉽게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의 연출이 건축사가 연출했다는 데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역문화시설도 최근에 누구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사진은 무사시노 PLACE라는 공공문화시설인데 지역주민들의 교양강좌와 아이들의 학습장소와 댄스연습장과 함께 지역도서관이 복합화 되어 있는데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쉬다가 갈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들이 눈에 띈다.

건축은 시대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생물과 같다. 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여 짓지 못하면 사놓고도 한 번도 입지 않는 옷과 같이 그저 외관이 멋있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늘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0년 전과 지금의 건축주들이 요구하는 빌딩의 요구사항이 다르듯이 공공문화시설에 대한 이용자들의 요구는 늘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달라지는 사람들의 요구에 늘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건축사들의 직업적인 숙명인지도 모른다.

무사시노 PLACE(사진=이을규)
무사시노 PLACE(사진=이을규)
국립세종도서관(사진=이을규)

 

[프로필] 이을규 교수 

•현 국립 한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교수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동경대 대학원 연구과 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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