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사의 저작권에 관하여
김준우 변호사
-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 서울대학교 사법학과 학사, 사법연수원 제32기
-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석사
-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석사
-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박사 수료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재미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일과 관련된 경우에는 말 그대로 고통이 더 크다.
변호사에게도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쓰는 것은 항상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고통스럽게 서면을 쓰고 변론을 수행해서 승소하면 그러한 고통이 조금이나마 보상이 된다.
다른 직종인 건축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주변의 지인들 말을 들어 보면 자신의 설계도면이 공모전에서 당선되는 명예나, 설계도면을 의뢰인에게 교부한 후 받는 대금 등이 그러한 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작성한 설계도면에 대해 순수한 내 것으로 인정받는 것은 이러한 보상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가 될 것인데, 사실은 이 인정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며, 이는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이다.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저작권법 제2조 제1항 제1호)를 말하며, 저작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에 대해 갖는 권리를 말한다.
건축물이나 설계도면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도 있으나,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5호는 “건축물 ·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을 저작물의 예로 들고 있으므로 이는 당연히 저작물에 해당한다.
즉, 건축설계와 관련한 저작물에는 건축설계 과정에서 생산되는 에스키스, 설계도, 모형, 그래픽과 건축물 등이 포함되며, 이를 바탕으로 저작한 사진, 영상 등의 2차적 저작물도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다만, 앞에서 본 것처럼 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창작성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법원은 아파트 평면도 및 배치도는 건축관계법령에 따라 건축조건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부분이 많고 각 세대전용면적은 법령상 인정되는 세제상 혜택이나 그 당시 유행하는 선호 평형이 있어 건축이 가능한 각 세대별 전용면적의 선택에는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창작성을 부인, 저작물로 보지 않으므로 위에서 본 생산물이 모두 저작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도29판결)
이러한 저작권은 크게 저작재산권(복제권, 저작물작성권),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저작이용권으로 나뉜다.
다행히 최근에는 협회가 저작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작권 침해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대응이야말로 협회의 존재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행위일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보면, 과거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설계공모의 경우 입상작의 저작권을 발주기관에 귀속하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관련 조항에 대한 시정을 권고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사적 영역에서의 공모나, 의뢰인과 건축사 사이의 용역계약에는 이러한 저작권양도조항이 종종 포함되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또는 저작권양도를 고려한 대가 책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건축사가 설계한 도면에 따라 건축된 독특한 건축물이 동영상 및 잡지 광고 등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과정에 건축주 외에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의 동의를 받지 않는 경우 저작권침해가 되는지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소송에서는 당사자들이 항소심 진행중 조정으로 분쟁종결에 합의하였기 때문에 아직 엄격한 의미에서 법원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워너브라더스사가 ‘배트맨 포에버’라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LA 시내의 유명 타워를 영화 속 고담시의 건물로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행위가 저작권침해라는 소송이 제기되는 등 유사소송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앞으로 이러한 권리 주장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2014년 6월 5일부터 시행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제22조 제1항은 공공기관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 등의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건축물 등의 설계자를 건축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의 저작권 보호가 더 강해질 것임은 분명하나, 이러한 사후 설계관리업무의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건축사의 권리보호를 위해 보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