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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우리의 집 - 22. 뒷간의 생태학

 

 

 

 

신동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건축학박사, 건축사>

2. 뒷간의 생태학

노자 도덕경 상선약수 장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을 뽐내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는 까닭에, 도에 가깝다.”

군소리 없이 낮은 곳에 머물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고, 공을 다투지 않는 것이 물이라는 찬사이다. 왜 뒷간을 논하면서 물을 말하려하는가? ‘KBS스페셜’에 의하면 수세식변기는 현재의 물 부족시대에 걸맞지 않는 최악의 물 낭비 시설이자 환경 파괴적 발명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이 1년간 수세식변기로 버리는 ‘1급수’수돗물은 약 11억 톤으로 영주댐 6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 된다. 게다가 물로 씻어 내린 대소변은 강으로 흘러가 하천의 부영양화, 바다 적조현상의 주범이 되고 있다. 4대강 유역의 하수종말처리장 방출수를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생물의 성비(性比)를 깰 수 있는 환경호르몬의 량이 종말처리장을 거친 하천의 물속에서 조차 기준치의 11배까지 검출된 것이다. 이것은 지구의 생물종을 멸종으로 이끌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말인 뒷간은 뒤를 보는 ‘칸’즉 집이란 의미이며, ‘측간’,‘변소’등으로 불리었다. 일반 서민들과 행랑채에 거주하는 머슴들은 문도 지붕도 없는 통시라고 일컫는 '달팽이 뒷간'에서 볼일을 보았다. 그 사례가 병산서원에 있다.

통시, 병산서원, 출처: http://www.byeongsan.net/

해우소, 출처: 이동범, 자연을 꿈꾸는 뒷간, 도서출판 들녘

 

 

 

 

 

 

화장실은 말 그대로 화장을 하는 공간 즉 서양식 파우더룸(powder closet)의 한자 변역이다. 중세 서양 귀족들은 파우더룸이란 공간에서 가발을 머리에 쓰고 가루를 뿌렸으며, 손도 씻고 얼굴 화장도 했다. 따라서 변을 보는 뒷간의 의미보다는 화장을 고치는 파우더룸에 가깝다. 변소(toilet)는 ‘toile’라는 프랑스어로 처음엔 화장할 때 두르는 망토를 의미했으나, 노상에서 볼일이 급할 때 중요 부분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 배설을 의미하는 “toilette”으로 변질되었고, 영어의 toilet의 어원이 되었다. “bathroom”은 목욕기능이 함께 있는 방을 “Restroom”은 주로 공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의 공중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신통방통하게도 비행기 안에서는 “Lavatory”로, 임금님의 변기는 “매화틀”, 절에서는 “해우소”, 또는 깨끗한 복도라는 뜻의 정랑(淨廊)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뒷간을 의미하는 용어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깝고 큰 관심사인 까닭일 것이다.

농경시대에 뒷간의 배설물은 버릴 것 없는 자원이었다. 비료가 마땅치 않던 시대에 같은 경작지에 연속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거름이 필요했고, 사람의 똥이건 동물의 똥이건 소중한 퇴비 자원으로 사용되었다. 사막의 유목민은 낙타의 똥을 땔감으로 쓰기고 하고, 인도에선 코키리 똥으로 종이를 만들기도 하며, 흙집을 짓는데 첨가물로 쓰기도 한다. “가난한 로마시대 민중들은 소변으로 빨래를 했다. 소변의 암모니아 성분이 기름때를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제혁, 염색, 제약 산업에도 소변은 없어서 안 될 자원이었다.”(다니엘 푸러, 선우미정 역, “화장실의 작은 역사”, 도서출판 들녘, 2005.)

그러나 도시에 사람이 모여 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모이는 도시에서 똥을 비롯한 인간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문제는 대단히 골칫거리였다. 로마 역시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 사람들의 배설을 위해 공중화장실을 만들어 귀족들의 사회생활의 장소로 활용했으며, 오물을 처리하기 위해 크로아카(cloaca)라는 하수구를 설치했고, 그 중 규모가 큰 것을 막시마(maxima)라 하였다. 1285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파리의 외부 오물투척 금지령을 1357년 에드워드 3세는 런던시의 오물투기금지령을 만들었다. 1539년 프란츠는 파리의 도시가 오염되어 말을 타거나 수레를 타야만 할 정도라고 말한 대목도 보인다. 더구나 재미있는 사실은 하이힐과 구두가 오물이 가득한 진창길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고 걷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여성들의 드레스와 남자들의 망토 또한 외부 활동할 때 볼일이 급하면 아무데서나 볼일을 해결해야 했고, 이때 중요 부분을 가리기 위한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에는 “오늘날 도성 안 대부분의 집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수레가 없어서 오물을 퍼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서울에서는 날마다 뜰이나 거리에 오줌을 버려서 우물물이 전부 짜다. 냇가 다리의 축대 주변에는 인분이 더덕더덕 말라붙어서 큰 장마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02105475, 재인용)

현대식 수세식 변기는 1775년 알렉산더 커밍스가 발명한 것을 3년 후 조셉 브라마가 개선한 것이 모델이 된 것이다. 수세식 변기의 개발과 하수처리 방법이 개발되고 보급되면서 드디어 도시에서 냄새나고 골칫덩이 오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였다. 수세식변기는 우리의 집안에서 냄새를 몰아내었으며 상수원과의 분리를 통해 위생적 도시 환경을 만들었다. 수세식변기와 하수처리 방법의 개발로 인간 수명이 3년 연장되었다는 미국과학원의 보고도 있으니 현대 문명에 단단히 한 몫을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반면 현대도시에서 수세식변기와 하수처리 시스템은 똥과 오줌을 깨끗한 물과 섞어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수많은 하수관로를 설치해서 모아야하며, 또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또 다른 자원을 낭비하고, 종래는 하천과 바다는 물론 토양으로 방류하여 자연을 오염시키는 자원 낭비적 시스템의 주범이기도 하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자연을 추방하였으며, 자연이 추방된 도시에는 인간 본능의 산물인 똥과 오줌은 불필요하고 빨리 버려야만 하는 쓰레기가 되었다. 야콥 브루메의 지적처럼 도시인들이 하루하루 만들어 내는 수많은 배설물들은 신속하게 도시 밖으로 내동댕이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버려지고 매설된다. (아콥 블루메, 김정미역, “화장실의 역사”, 이룸출판사, 2005.)

그러나 도시에서 쓰레기인 배설물들은 전원의 자연 속에서 비로소 가치를 되찾고 쓸모 있는 것이 된다. 이곳에서 똥거름은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생태학의 원리는 자원의 순환에 있다. 물은 생물에게 유용함을 다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가서 증발한 후 구름이 되어 다시금 육지를 적셔주는 생명수가 된다. 같은 원리로 우리가 배설하는 똥은 우리가 먹은 맛있고 위생적인 음식이었다. 그것이 몸속에 들어와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고 남은 부산물인 것이다. 에너지로 따진다면 약 50%의 에너지가 똥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뒷간에 나뒹굴어 냄새를 풍기던 똥이지만 발효의 과정을 거쳐 퇴비로 요긴하게 사용되어 흙으로 돌아갔으며, 우리의 밥상에 먹거리로 올라오는 순환과정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었다. 또는 다른 동물의 먹이로 식물의 자양분으로 사용되었다. 과거의 농경사회는 [그림3]과 같은 자연 순환 과정이 유지되었다.

현대의 도시에서 화장실의 문제는 [그림4]와 같이 거름으로 만들어지는 대신 깨끗한 물과 혼합되어 하수관을 통하여 종말처리장으로 옮겨지며, 화학적 재처리과정으로 거쳐 하천으로 방류된다. 인공적 처리과정에는 자연 순환 과정이 끊겨있다.

[그림3. 자연적 순환]
[그림4. 인공적 처리]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은 대변기와 소변기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절수형을 지나 물을 전혀 쓰지 않는 소변기가 개발되어있다. 또한 대변과 소변 가릴 것 없이 많은 세정수를 사용하는 가정용 대변기를 소변과 대변의 세정수 용량이 다른 절수형으로 교체하여야 한다. 그 밖에도 퇴비화 하는 방법, 동결 처리하는 방법 등 현대인의 삶의 편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물을 절약하고 자연의 정화 용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매일 먹거리에 대해 노력하는 일부라도 할애할 수 있다면, 우리의 배설물들을 온전히 자연의 순환시스템에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희망적인 것은 아직도 전 세계 사람의 60% 이상이 수세식변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태학자 Barry Commoner의 생태학 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작은 생태적 변화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또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야만 하며, 어디엔가 쌓이게 된다.’라는 것이다.(Barry commoner, “The closing circle”, Afredo A. Knopf, New York, 1971.)

우리가 더럽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버리는 온갖 삶의 부산물들은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어디에선가 다른 곳을 더럽히고, 퀴퀴한 냄새와 병균을 전파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디선가 나 아닌 다른 생물체의 삶의 터전과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사실이며, 또 언젠가는 그것들이 우리들이 사는 곳으로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우린 이제 자연의 순환시스템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점이 되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지구환경의 지속성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을 흥청망청 쓰고 하천에 방류하면 자연이 스스로 정화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종말을 고하였다. 따라서 도시민의 편리를 전제로 보급된 수세식 변기의 물 사용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자연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회복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뒷간의 생태학을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인영 기자  mybest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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