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 소방도로 개설로 건축자산 生家 철거위기

생가 중앙에 광교산

한글학자 이희승선생 항일운동사적지 생가 보존이 필요하다.

1855년에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87-34에 지어 사용 승인(일반건축물대장<갑>)된 생가는 의왕시의 보석 같은 건축자산이다.

2017년 7월6일 오전에 생가를 방문하니 집은 전염병같이 다세대주택으로 주변이 점령되어 있고, 도로신설로 철거위기에 놓여 있다. 시청 기록으로 보아 경기중남부지방에서 제일 오래된 농가로 보인다.

오래된 농가를 허접하다고 철거로 몰지 말고, 농가의 입장에서 사적지를 관리해 주어야 한다.

집 좌측에 청계산(618m) 중앙에(광교산(582m) 우측 모락산(385m)이 경관으로 보인다. 이집은 청계산 서측자락으로 좌우에 낮은 산이 삼태기 같이 감싸고 있다.

생가 동측에 살던 1936년생 한창석옹(翁)의 증언에 의하면

생가 뒤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다고 한다. 풍치가 수려하여 고대로 부터 좋은 집터로 보인다.

이희승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5살에 서울로 이사 갔다고 한다. 당시 이 주변에는 초교가 없었다. 동측옆집도 같은 안채6칸 바깥채가 4칸이고, 이희승생가도 안채 6칸 바깥채 4칸, 한 칸은 8자x8자로 본다고 설명하였다.

집 특징은 똬리 초가지붕 이었다고 한다. 설명에 의하면 평면은 4각형이고 지붕은 가운데가 원형이었다. 못을 사용안하고 지은 집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교진이 팔고 안동네 살던 경주김씨 김석진이 살다가 팔았다고 한다.

이 지역은 광주군에도 속했던 적이 있고 수원군에도 속하다가 시흥군의왕면에 속하다 지금은 의왕시에 속한다.

7월11일 오전11시경 의왕시청에 위기를 알리고, 서로 도와 문화유적을 보호해 나가자고 건의하였다. 의왕시에서 구입하여 수리후 어린이교육장으로 사용을 권장한다.

과거에는 똬리 초가집

국내항일운동사적지

변형 / 기본 골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곱은 자 집으로 후대에 대문간의 외양간과 창고 등을 살림방으로 개축하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형태의 구조이다. 주향은 남향으로 안마당에 낙수물이 모여 바깥마당의 텃밭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다. 봉당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이희승 공적조서」에 의하면 본적지는 경기도 개풍군 임하면 상조강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극로 등 5인 판결문」에는 본적지와 주소지가 모두 경성부 서대문통 죽첨정 2정목 65-27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 당시의 거주지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25의 1이다. 그러나 이희승의 회고록『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에는 생가가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 원전지는 개풍군 임하면 상조강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의왕시사』2권에도 가옥의 위치와 사진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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