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을 통제하는 사찰 문(門)

사도세자 원찰인 용주사에는 일반사찰과 달리 특이한 부분이 많은데 특히 출입문 부분에서 발견된다. 일주문 대신 홍살문이 있고 금강문 대신 삼문(三門)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삼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사진 : 사찰보다는 행궁의 외형이 보인다>

용주사의 홍살문을 지나면 웅장한 한옥이 나타난다. 거대한 삼문과 양쪽에 기다란 행랑이 길게 뻗어있는 것이 관아나 왕릉의 재실 같고 안동의 커다란 양반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보통 사찰 출입문은 문짝이 없어 자유롭게 출입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용주사는 문짝이 달린 거대한 솟을삼문이 있어 출입이 편하지 않다.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는 능(陵) 행차시 임금이 용주사에 머물 수도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성록(정조 14년 8월 20일)에 의하면 채제공이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모두 훌륭하지만, 누대(樓臺, 천보루) 앞이 터져 광활하니 삼문과 행랑을 두어 가마와 말 및 수행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조윤식의 의견이 있었다.’라고 아뢴다.

삼문과 행랑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공사가 끝날 무렵 공사 책임자인 조윤식의 의견을 받아 추가로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주사 창건시기 준공 전에는 천보루가 대문이었다. 하지만 외삼문을 세움으로 천보루는 중문(中門)이 되었고 대문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천보루 옆 익랑의 양여닫이 문은 지금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고 항상 닫혀있어 그 용도에 의문이 생긴다. 바로 이문이 창건기 천보루가 대문이었다는 흔적이다. 천보루는 임금이 사용하는 출입문이기에 일반인들은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익랑의 문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천보루가 대문 역할을 하려면 문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면 장초석(長礎石)에 문짝을 설치하기 직전 외삼문이 설치되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천보루와 익랑(익랑의 문은 창건시기 대문 흔적)>

문(門)은 위계가 있어 재력이 있다고 해서 크게 하거나 많이 만들 수는 없다. 황제국가인 중국의 황궁에는 오문(午門)으로 5개의 문이 있고 제후국가 조선은 왕궁에 삼문(三門)이 있었다. 그리고 왕세자의 문은 이문(二門)을 일반인들은 일문(一門)을 사용하였다.

삼문은 궁궐 이외도 설치되었는데 왕궁을 대신하는 지방관아와 공자를 모시는 향교에 설치된다. 그렇다면 용주사 삼문은 궁궐과 같은 행궁의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용주사의 대문채의 입면은 일반 왕릉 재실과 비슷하지만 솟을대문의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용주사는 대문 3칸이 모두 솟을지붕이지만, 일반 왕릉재실은 대문이 한 칸으로 이 부분만 솟을지붕으로 되어있다.

용주사의 대문이 삼문 솟을지붕으로 격을 높인 이유는 뒤쪽에 있는 천보루의 크기에 관계된다고 본다. 이 누각은 정면 5칸으로 모두 통로로 사용하고 있어 외문을 한 칸으로 할 경우 통로 폭의 차이가 크므로 삼문은 임금의 출입 등을 고려한 합리적 방법이라고 본다.

 

창건 시기와 달리 용주사는 왕실에서 벗어나 순수한 종교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영역도 확장되었다. 용주사의 합리적 건축운영에서 삼문과 행랑의 개선점을 생각해 보자.

현재 삼문의 활용은 어칸은 닫혀 좌우협문만 사용하고 있다. 어칸은 임금만이 사용하는 문이기에 당연히 닫혀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닫혀있는 문보다는 열린 상태로 출입만 통제한다면 더 불교적인 출입문이 될 것이다.

삼문의 출입방법에서는 현재 동쪽에 현액을 달아 출입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출입의 방법은 종교별로 달라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유교의 출입은 동입서출(東入西出) 방식으로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는 탑돌이 의식을 시계방향으로 함으로 서입동출의 출입방식을 가지고 있다. 창건 당시 능침사찰로 조성된 용주사가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출입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불교 교리에 따라 서쪽으로 출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용주사의 대문은 영역확장으로 여러 번 이동되었다. 처음에는 천보루이고 그 다음은 삼문이 되었다가 지금은 사천왕문이 대문이다. 하지만 중문이 된 천보루와 삼문에 대문채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삼문 : 행궁의 외벽같은 입면>

용주사의 출입방식은 대문위치 변화 흔적이 남아있고 홍살문이 있어 매우 특이하며 그 가치가 크기에 연구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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